불황의 그늘… 카드 모집인 줄고, 보험 설계사는 늘어

남편 없이 두 자녀와 함께 사는 신용카드 모집인 박모(50)씨는 15년간 해오던 모집인 일을 최근 그만뒀다.

카드시장이 포화되면서 회원을 새로 모집하는 게 쉽지 않아 수입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10년 전에는 볼펜 한 자루만 쥐여줘도 카드를 만들던 사람들이 지금은 5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을 흔들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여기에 12월부터 카드 길거리 모집 등 불법 카드 모집 행위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속칭 '카파라치' 제도가 시행되는 것도 두려웠다. 그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면접을 보고 있지만 불경기에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살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카드 모집인 올해만 1만명 감소

불황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금융권 모집인의 삶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등록된 카드 모집인은 작년 말 약 5만명이던 것이 최근엔 4만1000명으로 감소했다. 연말에는 4만명을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카드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데다, 불경기가 겹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경제활동인구 1인당 카드 보유량이 4.9장에 달한다. 또 1년 이상 쓰지 않은 휴면카드가 경제활동인구 1인당 한 장꼴인 2400만장에 달한다. 물리적으로 확장이 어렵다는 얘기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기존 카드도 사용액을 줄이고 있다.

카드사들은 수익이 줄어들자 카드 모집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 발급만 해온다고 모집인에게 수당을 주는 게 아니라 새로 카드를 발급한 고객이 일정액 이상 사용해야만 수당을 주도록 방침을 바꾸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집인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어들고 있다.

현대카드는 모집인에게 지급하는 총수당의 절반 정도를 발급수당으로 지급하던 것을 30%로 줄이는 대신, 이용수당 비중을 30%에서 50%로 높이는 방식으로 수당 체계를 변경해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국민카드도 6대4이던 발급수당과 이용수당의 비중을 올해 4대6으로 변경했다. 카드 모집인 송모씨는 "고객에게 2만원을 송금하면서 30만원만 써달라고 읍소하는 것이 일과가 됐다"고 말했다.

◇보험설계사는 불황에 늘어난다는 속설 증명

대출 중개인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다. 저축은행·보험사·할부금융사 등 제2금융권 대출 중개인은 6월 말 현재 1만4676명으로 작년 말에 비해 9.9% 줄어들었다. 당국이 가계부채 관리에 들어가면서 금융회사가 대출을 늘리는 것에 신중해진 데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보험 설계사는 2010년 이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 대조적이다. 생명보험협회에 등록된 설계사는 올 들어 7월까지 3.4%가 늘어 15만8273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역시 불황의 그늘일 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철영 금융감독원 보험업무팀장은 "불황일 때 진입 장벽이 낮은 보험 설계사 일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가장이 실직하거나 소득이 줄어들어 생계가 곤란해진 주부들이 생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전국적으로 지난 4~7월 사이 3개월간 남성 설계사는 184명 늘었고, 여성은 1254명이 증가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험계약 건수는 감소하고 있어 설계사 1인당 수입은 줄어들고 있다. 생명보험업계에서 올해 2분기에 새로 맺은 계약으로 들어온 보험료는 3조5404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7.4% 줄어들었다.

경기가 아니더라도 모집인들의 미래는 어두워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인터넷으로 직접 금융회사와 거래를 트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모집인들의 설 자리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손해보험업계에만 있던 다이렉트 보험사(인터넷으로 가입하면 저렴한 보험료를 받는 보험사)가 내년에는 생명보험업계에도 등장한다. 은행·할부금융사도 앞다퉈 다이렉트 상품을 선보이고 있고, 신용카드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터넷에서 직접 가입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