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民世賞 수상자 선정] "밥 좀 먹자(산업화) 말 좀 하자(민주화), 둘 다 소중해"

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1891~1965·사진) 선생의 민족 통합 정신과 나라 사랑을 기리는 ‘민세상(民世賞)’ 제3회 수상의 영예는 정성헌(66) 한국DMZ 평화생명동산 이사장(사회통합 부문)과 한영우(74) 이화여대 이화학술원장(학술연구 부문)에게 돌아갔다. 민세상심사위원회(위원장 이세중 환경재단 이사장)는 두 차례 심사위원회를 열고 사회통합 부문 17건, 학술연구 부문 15건의 후보자(단체) 중에서 정성헌 이사장과 한영우 이화학술원장을 만장일치로 수상자로 선정했다.

[民世는 누구] 일제강점기 민족운동가… 조선일보 주필·사장 역임

민세 안재홍 선생은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민족운동가로 9차례에 걸쳐 7년 3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일제하 최대 민족운동단체였던 신간회 총무간사를 지내며 좌우 합작운동을 주도했다. 조선일보 주필, 발행인, 사장을 역임하며 사설과 시평 등을 통해 일제를 비판하고 민족의 갈 길을 제시했다. 광복 후 미군정 민정장관, 제2대 국회의원으로 민족 발전과 통합을 위해 노력하다가 6·25 때 납북됐다.

민주화 운동으로 네 차례 옥고
산업화와 민주화 세대 화합 촉구
"한국 사회는 아프다… 중용이 藥"

"통합? 중도? 중용? 그거 양쪽에서 욕먹는 일입니다. 민세 선생은 그 어렵던 일제강점기와 해방 공간에서 중도를 이야기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최초의 좌우협동운동인 신간회에서 핵심 역할을 하셨죠. 그게 얼마나 궂은일이었을지,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모습이 새삼 떠오릅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자격 미달이에요."

제3회 민세상 사회통합 부문 수상자인 정성헌(66)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은 14일 "나는 자격 미달"이라면서도 민세의 마음고생을 충분히 짐작하는 얼굴이었다.

정 이사장은 고려대 정외과 재학 시절인 1964년 6·3시위(한·일 국교정상화 반대)를 시작으로 평생을 '운동'으로 일관해왔다. 1970~80년대엔 가톨릭농민회 사무국장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등으로 일했던 그는 1990년대에는 '우리밀살리기운동', 2000년대 이후엔 남북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지금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남북강원도협력협회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옥고도 4번 치른 그는 군사정권 시절엔 민주화를 위해, 6월 항쟁 이후엔 민주화를 넘어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회통합에 관한 그의 생각은 그동안 언론 인터뷰와 강연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화합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온 데서도 볼 수 있다.

그는 쾌도난마 스타일. "산업화란 '밥 좀 먹자는 것', 민주화란 '말 좀 하자는 것'이다. 민중의 입장에선 똑같이 중요한 것", "민주화가 산업화를 촉진하고, 산업화가 민주화를 촉진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쓴소리'도 자주 한다. 우파 진영뿐 아니라 민주화운동 진영 내부를 향해서도 "'사무실 중심 운동' '노동운동이 아닌 노동조합운동'은 문제다" "정치 부패, 관료 부패도 문제이지만 민간 부패도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대학생들에게도 "'일자리 없다'고 말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 일자리가 없다'고 정확히 말하라"고 대놓고 말한다.

쓴소리 듣기 싫은 건 인지상정.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쓴소리'를 마다 않는 것은 '큰 욕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정 이사장은 "보고 듣기에 달콤한 것, 이른바 '힐링'이라며 남 탓으로 돌리고 위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롭지 않다"며 "우리 사회의 문제는 근본적인 것과 기본적인 것, 현실적인 것을 혼동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근본이란 인간과 자연의 관계, 기본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다. 그는 "세상은 결코 선(善)과 악(惡)으로 단칼에 나뉘지 않는다"며 "나와 너, 세상과 지구가 모두 병들었는데 이기적으로 나 혼자만 살겠다고 '작은 욕심' 부리지 말자는 이야기"라고 했다. 정 이사장이 2009년부터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한국DMZ평화생명동산에서 동식물을 가꾸고, 현장 교육을 하는 것도 DMZ 생태 보존뿐 아니라 통일 이후까지 대비하면서 '근본'을 잘 가꾸기 위해서다.

그가 진단하는 현재 한국 사회는 '아프다'. 여야·빈부·지역·이념·남북으로 갈라짐과 갈등도 심각하다. "하지만 아플 때는 주변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게 그의 생각. "과거 IMF와 세계 경제위기 때 우리는 단결해서 잘 헤쳐왔습니다. 지금 또 위기랍니다. 단결까지는 몰라도 화합은 해야죠. 민세 선생처럼 탁월한 분이 계신다면 닫힌 마음을 어떻게 열까, 새삼 그리워지는 때입니다."

[수상자 선정 취지] 생명환경·남북 교류 운동 앞장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은 196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생명환경운동에 앞장서며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현장을 중시하는 실천운동, 미래지향적 운동을 펴왔다. 진보와 보수의 소통을 강조해온 대표적 진보 인사로서 원칙을 지키되 진영 논리를 넘어 다른 의견을 듣고 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온 점, 자기 헌신과 실천, 높은 도덕성 등은 이 시대 국민이 지도자에게 바라는 핵심 가치이다. 이에 수상자로 결정한다.  /심사위원 김진현·강천석·이세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