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재킷과 오토바이 버리고 평범한 아저씨로 돌아왔죠"

홍콩 느와르(범죄·폭력물) 영화가 한창 유행하던 1980~90년대, 류더화(劉德華·51)는 사랑과 의리에 죽고 사는 청춘의 표상이었다. 남자들은 그의 '청재킷과 오토바이'를 갈망했고, 그가 '지존무상'(1989) '천장지구'(1990)에서 코피를 줄줄 흘렸을 땐 그것마저 따라하고 싶어했다. 그때부터 쉰이 넘은 지금까지, 류더화는 30년 가까이 중화권 영화계의 정점에 있다. 그가 쉬안화 감독의 '심플라이프'(22일 개봉) 제작자 겸 주연으로 다시 팬들 앞에 섰다.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이번 작품에 큰 애착을 갖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고 하자 그는 "30여년 전 쉬안화 감독의 '망향'에서 처음 주연을 맡았고, 1991년 '화룡만가'가 그와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그 뒤로 쭉 감독님과 다시 작업하는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처음엔 감독이 '심플라이프'의 투자를 위한 자리에 나를 불렀는데, 시나리오를 읽고 굉장히 감동 받았다"고 했다.

'심플라이프'는 '천녀유혼'과 '황비홍'을 제작한 홍콩 영화인 로저 리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홍콩에서 4대에 걸쳐 로저(류더화)의 집안일을 해온 아타오(예더셴)가 중풍으로 쓰러진다. 로저에게 폐를 끼치기 싫었던 아타오는 양로원에 들어가고 로저는 그를 틈틈이 찾아가며 둘이서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다. 노년과 죽음에 대한 사려 깊은 태도와 일상에서 감성을 포착해 내는 세밀한 시선이 돋보이는 영화다.

로저는 성공한 영화 제작자이지만 후줄근한 옷차림에 배낭을 메고 다니는 평범한 중년 남자다. 느와르, 멜로, 무협 등 모든 장르에서 캐릭터의 선악을 불문하고 '멋진 남자' 역할을 주로 맡아온 류더화로선 의외의 선택이다. 그는 "아타오 역으로 예더셴(葉德�a·65)을 캐스팅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로저 역에 출연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감독 역시 로저 역에 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내가 그렇게 현실적인 역할을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했던 것 같다"고 했다.

예더셴은 이 작품으로 지난해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홍콩과 대만의 각종 영화제에서 두 사람이 연기상을 휩쓸었다. 영화에서 이 둘은 때론 모자처럼, 때론 친구나 연인처럼 자연스럽다. 류더화는 "예더셴과 나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모자(母子)로 출연했고, 실제로도 매우 친하게 지낸다. 우리는 그저 닮지 않았을 뿐이지 가족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고 잘 어울리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류더화는 1985년 데뷔한 뒤 지금까지 100편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가장 인상에 남는 배역을 묻자 "다 좋았다"면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캐릭터가 내 다음 배역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배우로서 특별히 조건들을 만들어 놓는 편은 아니다.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연기하고 싶다"고도 했다.

류더화는 데뷔 이후 30년간 줄곧 최고의 인기를 누려왔다. 비결을 물었다. "운이 좋아야 한다는 것? 나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더 많이 노력한 사람도 있으니까"란 심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오랫동안 인기를 누린 대신 그는 24년간 사귄 여자와의 결혼도 숨기고, 아이를 보호하려고 이사까지 다녀야 할 정도로 극성 팬과 파파라치들에게 시달렸다. 그럼에도 류더화는 "내가 연기를 잘했거나 못했거나 언제나 나를 지지해준 팬들이 있다는 사실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일하는 동안은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편이에요. 일이 끝나면 평범하게 일상적인 생활을 지속할 수 있으면 됩니다. 마치 요리사가 집에서는 요리를 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