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불황엔 끄떡없더니… 명품 매출도 내리막

21일 오후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명품관은 한산했다. 고객이 없어 우두커니 서서 매장을 지키는 점원들이 많았다. 드물게 오는 손님들도 제품을 살펴보기만 할 뿐 사겠다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던 명품업계에까지 불황의 여파가 번지고 있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소비심리가 위축돼 VIP(Very Important Person)마저도 지갑을 닫으면서 '불황 무풍지대'였던 명품 매출도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르메스 등 일부 최고가 브랜드의 경우엔 오히려 매출이 늘어 명품업계 안에서도 브랜드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 경제 위기, 명품시장까지 흔들어

이런 조짐은 올 하반기 해외에서 먼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달 23일 런던 증시에서 영국 명품 브랜드 멀버리(Mulberry) 주가가 부진한 판매실적 때문에 23.79% 폭락했다. 버버리의 이날 주가도 3.241% 하락했다. 버버리는 지난 9월 "중국 시장 매출이 예상을 밑돌아 올해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 브랜드의 가치 하락은 올해 상반기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미국 경제조사기관 ISI에 따르면, 티파니·LVMH(루이비통 모엣 헤네시)·페라가모 등 명품업체의 올해 2분기 매출 증가율은 17%로, 3년 만에 처음으로 20% 아래로 떨어졌다.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세계 최대 명품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의 매출이 저조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브랜드 드비어스는 올해 중국시장 매출 성장률이 작년(20%)의 절반 수준인 10%를 기록할 전망이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롯데백화점은 작년 1분기 명품 매출이 36% 상승하며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 감소, 올해 상반기엔 8%대로 추락했다. 신세계백화점도 명품 전체 신장률이 지난해 25% 성장 이후 올해 2분기 2.5%까지 떨어졌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적인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3분기 들어선 2분기보다 명품 매출이 다소 살아나는 분위기지만, 회복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지난 2분기 신장률이 워낙 바닥을 찍은 탓에 3분기 매출 신장률이 조금 올라간 듯하지만 사실은 '착시현상'"이라며 "명품시장은 아직 침체기"라고 말했다.

국제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와 이탈리아 시장조사기관인 알타감마도 "올해 명품시장 성장률이 지난해 성장률(13%)을 크게 밑도는 5%에 그칠 것"이라며 한동안 명품시장의 위기가 계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명품 중 큰 타격을 입은 쪽은 고가의 해외 화장품 브랜드다. 불황에다 최근 1~2년 사이 국산 화장품 경쟁력이 한류(韓流) 열풍을 타고 크게 높아진 탓이다. 백화점 명품 화장품 매출은 작년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최근엔 랑콤·에스티로더·디올 등이 이례적으로 화장품 가격을 5.4~16.7% 인하하기도 했다.

◇명품도 '부익부 빈익빈'

불황으로 명품시장이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일부 최상급 명품 브랜드는 오히려 매출이 늘어 브랜드의 위상을 단단히 다졌다.

불황으로 타격을 크게 받는 쪽은 명품 중 비교적 가격이 합리적인 브랜드가 대부분이다. 반면 초고가 시계 브랜드인 IWC·바세론 콘스탄틴 등은 매출이 매월 20~30%씩 늘고 있는 상황이다. 에르메스는 전 세계 상반기 총매출이 전년 대비 22% 성장했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명품을 한 개쯤 사두려는 중산층의 과시적인 소비심리가 불황으로 시들해진 반면 실용적인 제품을 찾거나,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만족을 위해 아예 초고가를 찾는 양극화된 소비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