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으로 아들 잃은 뒤, 장학금 1만명에게…

딱 25년 전인 1987년 11월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예고 뒷산에서 이 학교 성악과 2학년 이대웅군이 목숨을 잃었다.

훤칠한 키에 성악 실력이 뛰어났던 이군은 나흘 전 학교 정기연주회에서 독창자로 무대에 섰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이군을 질투한 3학년 선배 두 명이 이군과 그 친구를 뒷산으로 끌고 가 폭행했다. 태권도 유단자였던 선배에게서 복부를 맞은 이군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아버지 이대봉(71) 참빛그룹 회장은 여전히 힘들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참빛그룹 본사에서 만난 이 회장은 눈시울을 붉히며 떠나간 막내아들을 추억했다. 사고 당시 그는 사업차 미국 출장길에 있었다. "아들의 사망 소식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의사에게 전화해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아들을 살려 달라'고 소리쳤죠."

처음엔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학교가 원망스러웠다. "너무 화가 나 '학교를 부숴버리라'며 경비 직원 수십명을 보내기도 했죠."

아들을 가르쳤던 음대 교수가 사흘 뒤 장례식장에서 그에게 제안했다. "대웅이 죽음을 기릴 수 있는 장학재단을 만드는 게 어떨까요?" 그 말에 이 회장 마음이 흔들렸다. '주먹 몇 대 맞고 세상을 떠날 양이면 하나님이 데려가신 것이다. 용서하자.'

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가해 학생을 풀어달라고 검사에게 부탁했다. 담당 검사는 "검사 생활 20년에 아들 죽인 놈 용서한다는 부모 본 적 없다"고 했다. 수차례 탄원으로 마침내 가해 학생이 풀려났다.

이듬해 아버지는 '이대웅 음악 장학회'를 만들고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성악 콩쿠르를 통해 고등학생과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10여년 전부터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국내 대학생 80명, 중국 조선족 학생 100명, 베트남 학생 300명 등 매년 학생 50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지금까지 장학금 혜택을 받은 학생은 1만여명에 이른다.

2010년 그는 아들이 다녔던 서울예고와 예원학교 재단인 학교법인 서울예술학원(전 이화예술학원)을 인수했다. 인수 당시 학교는 재정난과 부실 운영, 횡령 사건 등으로 얼룩져 있었다. "대웅이에게 유산을 남긴다는 생각으로 학교를 인수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장학사업을 하는 동안 그의 마음이 늘 편안했던 것만은 아니다. "이따금 아들이 '아버지는 왜 내 원수를 갚아주지 않는 거냐'며 울부짖는 것 같은 환청이 들렸습니다." 그때마다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자'고 다짐했다.

2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는 '이대웅 음악 장학회' 출신 음악가들이 음악회를 연다. 대웅이가 떠난 지 25년 되는 날이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서예리와 테너 정호윤 등이 무대에 선다.

이대봉 회장은 아들이 떠난 후 학교 폭력과 싸우는 전도사가 됐다. 지금은 학교폭력예방단체인 인성교육 범국민 실천연합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아들이 죽은 이후 서울예고에서는 '학교 폭력 가해자는 무조건 퇴학'이라는 원칙이 생겼습니다. 학교 폭력이 사라지고 세계적인 예술가가 많이 배출되게 해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