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도, 에티오피아 족장도… 이들의 기술에 반했다

진단용 엑스선 촬영기 제조업체 동문에 최근 미국의 한 의료기기 바이어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전까지 한 번도 거래한 적이 없는 거래처였다. 며칠 뒤엔 또 다른 해외 바이어가 전화를 걸어와 자기들과도 거래를 트자며 주문을 냈다. 연유는 곧 밝혀졌다. 유엔이 미얀마에 지원할 의료기기 입찰공고를 냈는데 '휴대용 엑스선 촬영기는 동문 제품으로 납품하라'고 지정을 해놓은 것이다. 김동수 대표는 "유엔이 우리 제품을 어떻게 알고 납품목록까지 지정했는지 깜짝 놀랐다"며 "1994년 설립 초기부터 '동문(Dongmun)'이라는 자체 브랜드로 승부한 게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자기 브랜드로 수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전문가들은 "대기업도 따라오기 힘들 정도의 혁신적 기술력이 바탕이 돼야 수출 강소(强小)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들고 다니는 엑스선 촬영기

동문의 휴대용 엑스선 촬영기가 대표적인 혁신 제품이다. 엑스선 촬영기 시장은 미국 GE, 독일 지멘스 등 글로벌 일류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주로 병원에 납품되기 때문에 기존 유통망이 쳐놓은 진입 장벽을 뚫기도 어렵다. 동문은 작고 가벼운 휴대용 촬영기 개발에 승부를 걸었다. 이 회사 제품은 '007 가방' 크기에 들고 다니면서 엑스선 촬영이 가능하다. 내구성이 뛰어난 데다 해외 대기업보다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 세계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수출이 전체 매출의 90%를 넘는다.

사후 서비스에도 신경을 썼다. 직원이 아프리카까지 직접 찾아가 애프터서비스를 해줬다. 물건을 사갔던 에티오피아의 족장이 이 서비스에 감동해 주변의 여러 부족과 신설 병원을 소개해줬다. 김 대표는 "의료기기는 처음 진입은 어렵지만 한번 거래를 터 품질력을 인정받으면 꾸준히 거래를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볼트·너트로 격납고 조립 뚝딱

캬라반이에스는 조립식 구조물 시장에서 이름을 날리는 강소기업이다. 막사와 비행기 격납고 등으로 쓰이는 대형 조립식 구조물을 생산한다. 이 회사 제품은 모두 볼트와 너트만 사용해 설치한다. 중장비가 필요 없이 손으로만 설치하니 작업 속도가 훨씬 빠르다. 언제든지 다시 조립해 재사용할 수 있다. 또한 이중벽체 공법을 적용해 단열 성능도 우수하다.

2003년 유엔에 조립식 구조물을 처음 수출한 후 평가에서 당시 최고점인 98점을 받았다. 유엔에서 한번 신뢰를 얻고 난 후 간이 샤워시설과 화장실 등 야외 위생설비로 계약이 확대됐다.

2009년에는 시속 240㎞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는 튼튼한 조립식 구조물을 개발했다. 유엔본부 국제설계 입찰에서 최우수 제품으로 선정돼, 유엔 평화유지군(PKO)에서 1억달러 규모 독점공급 계약을 따냈다.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JAEA)가 시행하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방지 사업 참여 업체로도 선정됐다. FIFA(국제축구연맹)와 풋살(실내축구) 경기장 공급 계약도 맺었다.

권혁종 대표는 "국내외에서 발명특허 13건을 획득했고 20여건이 추가로 심사 중"이라며 "독창적인 기술력과 한국인 특유의 속도가 결합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 2리터면 자동차 세차 거뜬

부산 기장군에 있는 SJE는 전 세계 고압(高壓)스팀세차기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다. 기존 세차기계는 폐수가 많이 생겨 사용처가 제한됐다. 이 회사는 2000년대 중반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고압스팀세차기를 개발했다. 유호묵 대표는 "물 대신 스팀을 분사해 세척력은 높이고 물 사용량을 50분의 1로 줄이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이 제품은 물 2~3L면 자동차 한 대를 세차할 수 있다. 중동 지역 등 물이 부족한 나라와 환경규제가 까다로운 유럽에서 인기가 높다.

세차기는 자유롭게 끌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작다. 세차기 내부의 보일러에 갖가지 특허공법이 적용돼 효율은 높이고 덩치는 줄였기 때문이다. 배기가스를 이용해 공기를 데워 보일러에 공급하는 방법으로 효율을 높였고, 보일러 주변에 차단재를 넣지 않아도 되는 신기술로 소형화에 성공했다. 올해 500만달러 수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역협회 박부규 상무는 "시장이 필요로 하는 실용적이고 독창적인 신기술을 확보한 기업들이 수출 강소기업으로 뻗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