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이 닥치기 前 움직인다, 양양의 3分 특공대

지난 24일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영덕리 양양(襄陽)양수발전소. "1호기 기동!" 스피커를 타고 주제어실의 지시가 내려지자 지하발전소의 수차(水車)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상부 댐에 담겨 있던 물이 819m 높이에서 떨어지며 수차를 돌려 전기에너지를 만드는 소리였다. '양수(揚水)'란 말 그대로 물을 끌어올린다는 뜻이다.

이어서 3·4호기까지 가동을 시작하며 멈춰 있던 3대의 발전기가 차례로 전기를 생산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분 남짓. 비수기인 주말 낮을 이용한 시험가동에서도 '3분 특공대기조'라 불리는 양수발전소의 위력은 그대로 느껴졌다.

임도빈 발전운영팀장은 "양수발전소는 전력거래소에서 핫라인을 통해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2분 30초면 최대 출력으로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며 "멈춘 상태에서 출력을 최대로 높이는 데 4시간가량 걸리는 화력발전이나 24시간이 소요되는 원전(原電)뿐 아니라 30분 정도 필요한 가스발전보다도 훨씬 빠르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블랙아웃 우려 등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렸을 때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최후의 소방수인 셈이다.

설악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양양발전소는 25만㎾ 규모 발전기 4대가 있는 국내 최대 규모. 상부댐은 인제군, 지하발전소와 하부댐은 양양군에 걸쳐 있다. 본관 옆 6m 높이의 진입터널 입구에서 2㎞가량 들어간 곳에 가로 120m, 세로 20m, 높이 21m 규모의 변압기실과 그보다 높이만 두 배 정도 높은 지하발전소가 있다. 상부 저수지에 물이 가득 채워져 있는 상태에선 9시간 24분 동안 원전 1기와 같은 출력(100만㎾)으로 전기를 생산해 낼 수 있다.

양수발전소는 국내 전력계통의 주파수와 전압을 일정하게 해주는 핵심 설비로 꼽힌다. 윤봉중 양양 양수발전소장은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전력 수요에 맞춰 양수발전소는 우리 몸의 맥박과 같은 전력계통의 주파수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전력공급을 조절한다"며 "마치 통장에서 카드 값과 공과금 등이 빠져나갈 때마다 잔액을 맞추기 위해 급하게 자금을 이체하는 것과 같은 역할"이라고 말했다. 발전을 시작하면 100만㎾나 50만㎾로 출력을 유지하는 원전이나 화력발전과는 달리 양수발전소는 수만㎾에서 수십만㎾까지 전력 공급을 조절할 수 있어 계통 조정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소장은 "양수발전은 수요가 적은 밤엔 원전과 화력발전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소비하고, 공급이 달리는 낮시간엔 일시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국내 전력수급의 균형을 맞춘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신고리변전소 고장으로 100만㎾급인 신고리 1·2호기가 갑자기 멈췄을 땐 양양 양수발전소 1~4호기가 긴급 가동에 들어가 전력 수급 문제를 해결했다. 지난해 9월 15일 순환 단전 때에도 모든 발전기가 돌아가며 100만㎾의 전기를 생산했다.

전국의 양수발전소는 모두 8개. 1980년에 가동을 시작한 청평양수발전소(40만㎾)부터 지난해 완공된 예천양수발전소(80만㎾)까지 모두 470만㎾ 규모다. 한국수력원자력 김균섭 사장은 "전력 피크 때 예비전력이 500만~600만㎾ 수준으로 떨어졌을 때 예비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양수발전"이라고 강조했다.

윤 소장은 "블랙아웃이 되면 1500㎾급인 비상 디젤발전기를 돌려 양수발전을 시작해 인근의 영월화력발전소 등으로 전기를 공급한다"며 "이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1시간 동안 25만㎾h(킬로와트시)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수량은 유지한다"고 말했다.

☞양수발전

전력 수요가 적은 심야에 남는 전기를 활용, 펌프를 돌려 하부 저수지에 있는 물을 상부 저수지로 올려놨다가, 수요가 많은 낮시간엔 물이 떨어지면서 수차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 배터리를 충전했다가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