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1.28 02:46

THANKS TO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늘 그렇듯 올해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빚졌다.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면 따뜻하게 손 내밀어주던 사람. 앞이 보이지 않아 망설일 때면 길을 가르쳐주던 사람. 여기 지면을 빌려 그에게 전한다. 미처 돌려드리지 못한 감사의 인사.


원일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국립국악관현악단
고마운 이 | 순천대학교 금속재료공학과 박용범 교수님.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멘토로서 지속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신 분입니다. 교수님은 제 젊은 시절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힘에 대해 깨우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구례 화엄사에서 주최하는 음악제인 ‘화엄제’의 총감독으로서 음악과 과학을 삶의 영성(Spirituality)으로 통합하는 데 주력하고 계시지요. 교수님을 통해 저는 한 사람과 지속적인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배우고 있습니다.

그분을 위한 선물 | 박용범 교수님은 순천에 직접 지은 조그마한 집에 살고 계신데 그 공간을 밝혀줄 양초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마실 차(茶)도…. 지금껏 저는 한 번도 교수님께 선물다운 선물을 해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가족들과 순천의 교수님 댁을 방문하고 싶어요.

감사의 인사 | 삶의 중요한 순간들마다 교수님과 나눈 대화는 제 삶에 큰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은 저로 하여금 독서와 공부를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실로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는 듯합니다.


김은주 허리우드클래식 대표

©이경민
고마운 이 | 박상기 선생님.

2010년에 허리우드클래식 관객으로 만난 분이자, 제 평생의 은인입니다. 지금의 실버영화관을 개인 사비로 간신히 운영하던 초기, 저는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당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타고 다니던 자동차까지 팔았는데 약 3000만원이 부족해 부도(?) 위기에까지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박 선생님께서 저를 보시고는 “늘 웃는 김 대표가 왜 오늘은 얼굴이 어둡냐”고 물으시더군요. 망설이다 아주 어렵게 사정을 이야기했는데, 그날 바로 제게 3000만원을 건네시는 겁니다.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 일이라 다행이다”면서요. 각서 한 장 받지 않으셨죠. “실버영화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다”며 우리 직원에게 제 주소를 물어 극장으로 옥돔을 보내주신 것이 첫 인연이었고, 제가 감사 표시로 식사를 대접한 것이 두 번째, 그리고 그날이 겨우 세 번째 만남이었죠. 당시의 벅찬 감사함은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죽을 만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분을 위한 선물 | 외투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지난겨울 어쩐지 좀 추워 보이시더라고요. 그리고 나머지는 진심 어린 마음의 온기로 채워드리고 싶습니다.

감사의 인사 | 3000만원 때문에 영화관 문을 닫아야 하는 현실이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었는데 박상기 선생님의 큰 은혜로 어려운 상황이 감사함으로 채워졌습니다. 그 계기가 저를 한층 성장시킨 것 같네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상만 마로니에북스 대표

©장은주
고마운 이 | 문학평론가 이어령 선생님.

젊은 날 읽었던 이어령 선생님의 책들이 떠오릅니다. 저를 비롯한 수많은 젊은이를 이끄는 석학이셨던 선생님은 지금도 여전히 시대의 지성으로 자리하고 계십니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르침의 끈을 놓지 않고 활발히 활동하시는 선생님께 저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선생님과의 첫 인연은 마로니에북스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마로니에북스 1001 시리즈’ 중 한 권인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의 저자 이세기 선생님께서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지요. 당시 이어령 선생님께서는 여든이 되는 해에 맞춰 그동안 작업하신 저작물을 모두 모아 꿰는 작업을 기획하고 계셨는데, 그 저작물 구슬 꿰기 작업에 우리 출판사를 소개해주신 것입니다. 처음 뵈었을 때 느낌이 좋으셨는지 선뜻 저희에게 함께 일할 수 있는 행운을 주셨지요. 지금 저희는 선생님의 저작물을 수집하고 분류해 재편집하는 작업에 전력을 쏟고 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우고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올해가 가기 전에 그 책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분을 위한 선물 | 십년 전부터 저는 주말농장에서 직접 장을 담그고 있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담갔는데 어느새 장독이 마당에 가득 찼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고추장을 참 좋아하십니다. 어느 식당에서 어떤 음식을 드셔도 절대 고추장을 빼놓으시는 법이 없지요. 고추장을 좋아하시는 선생님께 직접 담근 고추장과 된장, 간장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감사의 인사 | 선생님! 아직도 끊임없이 연구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뒤를 따라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발자취와 세상을 꿰뚫어보는 지혜는 저희가 살아갈 날에 큰 등불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의 신뢰에 보답하도록 모든 일에 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손원경 토이키노뮤지엄 대표

©이경민
고마운 이 | 할머니 故 홍태희 여사.

할머니는 제가 5살 무렵 심장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마 되지 않지요. 더욱이 저는 학창시절 내내 외가에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손에 자랐고 오랫동안 친가의 존재를 잊고 살았습니다. 물론,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은 늘 갖고 있었어요. 추사 이래 최고의 서예 대가로 꼽는 소전 손재형 선생이 바로 제 할아버지이시거든요. 그러나 저도 모르게 친가에 대한 배타심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마흔을 앞둔 5년 전부터 친가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 시작하더군요. 특히 할머니께서 장손자인 저를 무릎에 앉혀놓고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시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그 내용은 떠오르지 않지만 아마도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리나 예의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느낌은 선명합니다. 손원경만을 참 많이 아끼시던 할머니의 마음…. 그때의 그 마음이 지금의 저를 키운 게 아닌가 싶네요.

그분을 위한 선물 | 그간 제사를 소홀히 했어요. 생각할 때면 늘 죄스러웠는데, 이제는 친가와 외가 조부모님들을 기리면서 효도하며 살고 싶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자손이 되고 싶어요. 가족 안에서 소박한 모습으로. 아울러 자식을 낳아 안겨드리면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되겠네요. 할머니께서 “우리 손주가 드디어 대를 이었구나” 하시면서 기뻐하실 것 같아요.

감사의 인사 | 생전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우동을 함께 앉아 맛있게 나눠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우동을 즐기는데, 우동을 먹을 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거든요. 그리고 어렸을 적 저를 무릎에 앉혀놓고 무슨 말씀을 하셨던 건가요? 그 얘기들을 다시 하나씩 꺼내어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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