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게 형제란 인생의 험난한 길을 함께 행군하는 전우와 같다. 지금 당신 곁에는 군장을 대신 짊어져줄 형제가 있는가? 누군가의 얼굴이 퍼뜩 떠오르지 않는다면 형제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길을 나선 네 남자, 이들을 주목하라.
사형제가 세상에 출사표를 던진 건 지난해 12월, 종로구 계동에 정통 황해도한정식전문점 ‘더 하베스트’의 문을 열면서다. 더 하베스트라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사나이답게 의기투합한 것. 각자 역할도 명확하다. 맏형 이승준 씨는 황해도 전통요리 연구가인 어머니에게 배운 요리 솜씨로 주방을 책임지고 둘째 이승헌 씨는 재무를 담당한다. 셋째 임대일 씨는 재고 운영, 막내 배영민 씨는 기획 및 디자인이 주 업무다. 이름의 돌림자를 보고도 짐작하겠지만, 승준 씨와 승헌 씨만 친형제이고 대일 씨와 영민 씨는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친구 사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서로를 악착같이 형제라 칭한다.
‘더 하베스트’의 공동대표 이승헌, 배영민, 임대일, 이승준 씨(왼쪽부터).
30초, 형제가 되는 데 필요한 시간
이들의 인연은 그리 오래전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승준 씨와 대일 씨는 2003년 ‘붉은악마’ 응원 활동을 통해 안면을 익혔고, 승헌 씨와 영민 씨는 2005년 영화 제작 일을 함께 하며 친해졌다. 이후 이들 넷은 곧잘 어울려 다녔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수시로 만나 밥 먹고 술 마시고 하면서. 그러다 2년 전 우연히 ‘일’이 터졌다. 승헌 씨의 설명. “그랜드민트페스티벌(GMF)이라는 음악축제가 있어요. 재미 삼아 거기 부스를 하나 얻어 불고기덮밥을 판매하기로 했죠. 지금 멤버가 그때 구성된 겁니다. 호흡이 꽤나 잘 맞았어요. 이틀 동안 함께하면서 자연히 파트도 나뉘었고…. 그때 나뉜 파트를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당시 영민이와 저는 작은 식당을 구상하며 홍대 일대 매장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축제가 끝나고 몇 달 후까지 별 진척이 없었죠. 그러던 차에 승준 형이 지금의 더 하베스트 얘기를 하며 같이 해보자고 제안한 겁니다. 약 30초. 우리가 제안을 받아들이기까지 걸린 시간이죠.” 세 명의 동생이 맏형의 제안을 단숨에 수락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믿음 때문. 함께라면 즐거울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사형제는 황해도한정식전문점 ‘더 하베스트’를 오픈하면서 준비 기간만 1년 이상을 소요했다. 사업의 전반적인 기획은 물론 작은 인테리어 소품까지 어느 것 하나 공들이지 않은 것이 없다. 이 기간에는 단칸 오피스텔에서 합숙을 하기도 했다.
사형제는 더 하베스트 오픈을 준비하는 데 1년 이상의 시간을 소요했다. 사업의 전반적인 기획은 물론 작은 인테리어 소품까지 어느 것 하나 공들이지 않은 것이 없다. 준비 기간에는 단칸 오피스텔에서 9개월간 합숙을 하기도 했는데, 맏형 승준 씨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이렇게 말한다. “작은 방에서 함께 먹고 자고 작업하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누구 하나가 없으면 너무 보고 싶을 정도로 가까워졌죠. 이 시간이 우리 형제들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네 남자
이후 사형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 든든한 버팀목이 돼 갔다. 대일 씨는 넷이 모여 있으니 “뭐든 네 배가 되는 것”을 가장 좋은 점으로 꼽는다. 물론 대표로서의 부담감 등 그리 달갑지 않은 것들은 모두 4분의 1로 줄어드니 더욱 좋다. 영민 씨의 생각 역시 다르지 않다. “영화 <친구>에 이런 말이 나오죠. ‘함께 있을 때 우린 두렵지 않았다.’ 네 명이 함께 있다는 게 정말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사형제는 황해도한정식전문점 ‘더 하베스트’를 오픈하면서 준비 기간만 1년 이상을 소요했다. 사업의 전반적인 기획은 물론 작은 인테리어 소품까지 어느 것 하나 공들이지 않은 것이 없다. 이 기간에는 단칸 오피스텔에서 합숙을 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개성 강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네 남자는 자신만의 끼를 맘껏 발산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주기도 한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한 네 사람이 만나 무언가를 고민하다 보니 보다 창의적인 사고를 도출해낼 수 있어 좋다”는 승준 씨.
그도 그럴 것이 넷의 이력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후 외식업에 뛰어든 승준 씨와 영화 PD로 활동한 승헌 씨, 연기를 전공한 후 시계회사 MD로 일한 대일 씨, 그리고 장르를 넘나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영민 씨…. 살아온 과정이 다른 만큼 성격도 제각각이다. 승준 씨가 동생들 사이의 균형을 잡는 리더라면 승헌 씨는 꼼꼼한 분석가이며, 대일 씨가 정리정돈을 잘하고 바지런하다면 영민 씨는 예술가 기질이 강하다. 대일 씨가 덧붙여 말한다. “하나의 사안을 놓고 화내는 포인트도 다 다르죠. 다행히 웃음코드는 같지만요.”
물과 기름처럼 쉽사리 섞일 것 같지 않은 네 남자의 공통점이라면 고집이 세고 주장이 강하다는 것. 이 점이 사형제에겐 가장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방향이 어긋나기라도 하면 각각의 생각들은 너무 세게 충돌하고 만다. 하나의 결론을 얻기까지 의견을 조율하는 시간도 매우 길다. 다행히 형제들은 이 역시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리더의 한 말씀. “일과 후에 수시로 불만이나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면서 풀기 위해 노력하죠. 큰형으로서 동생들에게 당부하는 한 가지는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서로를 미워하거나 마음으로 분노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 점을 동생들도 깊이 이해하고 있어요.”
사형제는 황해도한정식전문점 ‘더 하베스트’를 오픈하면서 준비 기간만 1년 이상을 소요했다. 사업의 전반적인 기획은 물론 작은 인테리어 소품까지 어느 것 하나 공들이지 않은 것이 없다. 이 기간에는 단칸 오피스텔에서 합숙을 하기도 했다.
목표는 하나, 그러나 꿈은 넷
그런 의미에서 더 하베스트의 지난 1년은 서로가 서로를 더 알아가는 시간이었다고 평가해도 좋다. 또다시 리더의 말씀. “한번은 승헌이와 대일이가 간장게장에 들어가는 간장을 달이고 옮기다 손잡이가 끊어져 발에 화상을 입는 일이 있었어요. 새벽에 구급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죠. 제가 아침에 나와 얘기를 들어보니 밤새 형이 걱정할까봐 전화도 하지 않았다고 해요. 둘 다 발을 심하게 데어 한 달 정도 일을 하지 못했는데, 그때 동생들을 보면서 미안함과 고마움에 눈물이 나더라고요.”
웃고 울던 지난 1년을 발판 삼아 사형제는 이제 보다 큰 꿈을 꾼다. 그들만의 공간을 위한 궁극의 목표는 같지만 각각이 꾸는 꿈은 엄연히 다르다. 연극쟁이 대일 씨는 조그마한 소극장을, 영화꾼 승헌 씨는 외식업 관련 영상사업단을 차차 꾸려볼 생각이다. 승준 씨는 지금의 역할을 이어 한식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우리나라 음식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뜻을 갖고 있다. 영민 씨는 전방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무대를 더욱 넓히고 싶다고.
사형제는 황해도한정식전문점 ‘더 하베스트’를 오픈하면서 준비 기간만 1년 이상을 소요했다. 사업의 전반적인 기획은 물론 작은 인테리어 소품까지 어느 것 하나 공들이지 않은 것이 없다. 이 기간에는 단칸 오피스텔에서 합숙을 하기도 했다.
참고로 영민 씨의 프로젝트는 지금도 활발히 진행 중인데, 그중 하나가 더 하베스트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이다. 4월부터 10월까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플리마켓은 상업적 성격을 배제한 전통적 의미의 재래시장에 가깝다. “더 하베스트를 운영하기 전에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놀았어요. 그러다 1년 전부터는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했죠. 갇혀 지낸다는 답답함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내가 나가 놀지 못할 바에는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자고요.”
어디로 튈지 도통 알 수 없는 이 남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속 얘기를 한마디씩 꺼내달라고 청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랑한다”는 낯간지러운 고백을 늘어놓는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전한 진심은 잘 전달되었을까.
이쯤에서 털어놓자면, 이 매력적인 남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펼치기엔 지면이 너무 좁다. 기회가 될 때 사형제가 가꾼 공간에서 그들이 쌓아가는 추억을 직접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이들이 손수 만든 음식을 맛보는 행운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