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어머니들 자립 돕는 학교 50개 세울 것"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했을 때 난생처음 보는 풍경인데도 낯선 느낌이 별로 안 들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렸을 적 할머니가 항상 말하던 6·25전쟁 후 한국 모습이더군요. 한국인들의 기부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우리도 한국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겁니다."

주한미군 의무병인 서우석(45)씨는 아프가니스탄에 학교를 세워주기 위한 기금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난 서씨는 고교 때인 1983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가 의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2학년을 마칠 무렵 아버지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돈벌이에 뛰어들었다. 유통업을 크게 해 돈도 좀 벌었지만, 2008년 상황이 많이 어려워지자 미군에 입대했다.

서씨가 모금 활동을 시작한 건 2009년 1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면서부터. 그는 "매일 환자 수백명이 몰려드는데 아비규환이란 말은 그런 상황에 쓰라고 생긴 말 같았다"고 했다. 당시 환자 가운데 찢어진 발가락을 치료받으러 3일을 맨발로 걸어왔다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서씨는 "그분을 치료해 보낸 뒤 '왜 내가 갖고 있던 여분의 신발을 주지 못했을까' 하는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다음 날 서씨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나눠줄 물품 기부를 받는다'고 쓴 전단지를 부대 곳곳에 붙였다. 블로그도 개설해 미군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기부를 요청했다. 반응은 예상보다 커 3개월 만에 1만 켤레의 신발과 수천 벌의 옷, 각종 물품이 쌓였다. 미국 유명 배우 게리 시니스는 신발 400켤레를 보내왔고, 직접 부대를 방문해 주민을 위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씨는 물품 원조가 '일회성 도움'에 그친다는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동료들과 힘을 모아 2010년 10월 학교를 세웠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과부들과 그 자녀들을 위한 학교다.

"학교에서 글과 재봉틀을 가르쳤어요. 과부 학생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지만, 일감을 받아와 집에서 재봉틀로 일하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죠." 2개월 과정인데, 지금까지 7기 200여명의 여성이 졸업했다. 졸업생에겐 재봉틀을 한 대씩 선물했다.

두 번째 학교 설립을 위한 모금이 시작될 무렵인 작년 9월 서씨의 한국 근무가 결정됐다. 서씨는 "제 어머니가 저를 먹여 살리려고 재봉틀을 돌렸던 기억이 남아 있는 한국으로 배치됐다는 소식에 '이게 무슨 운명인가' 싶었다"고 했다.

서씨는 한국에서 기부를 받아 아프가니스탄에 학교 50개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프가니스탄 과부들과 그 자녀들을 위해 필요한 최소 학교 수가 50개이기 때문이다.

서씨는 지난 6월부터 근무가 없는 날을 이용해 알음알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며 모금을 시작했다. 다섯 달 만에 1000만원 가까이 모였다. 학교 50개 설립을 위해 필요한 돈은 2억원. 서씨는 "단순히 불우 이웃을 돕는다는 뜻을 가진 미국인들과 달리 한국 분들은 아프가니스탄 현지 상황을 들려주면 진심으로 아픔을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다"며 "내년까지 꼭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