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축, 광장 감쌌더니 공간이 열렸다

"건축가는 사람의 삶을 보살피고 공간적으로 조직해주는 직업입니다. 특히 공공건물이 그렇습니다."(영화 '말하는 건축가' 중 건축가 고(故) 정기용)

충남 서천의 '봄의 마을'(설계 윤희진 경기대 교수)은 올해 국토부 주최 한국건축문화대상 대상(공공부문), 한국건축가협회 주최 건축 베스트7 등을 잇달아 수상하며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5개 건물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지자체의 위용을 자랑하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공공건축의 현실을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해낸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지난 22일 건축비평가인 배형민 서울시립대 교수와 함께 '봄의 마을'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①주인공은 광장이다

'봄의 마을'은 광장 전면을 중심으로 친환경농산물판매센터·일자리종합센터·여성문화회관·청소년문화회관·종합교육센터 등 5개 동이 시계 방향으로 반원(半圓)을 그리며 배치돼 있는 복합문화시설이다. 동판으로 마감된 청소년문화회관을 제외하고 대부분 노출 콘크리트로 마무리됐다.

배 교수는 "광장을 마주 보고 섰을 때 뒤로 갈수록 점층적인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한 게 눈에 띈다"고 했다. "건물 윤곽을 마치 산의 능선처럼 배치한 거죠. 도로에 면한 건물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고 평범한 반면, 뒤로 갈수록 건물의 규모가 커지며 외관이 과감해지는 게 그 예입니다. 가운데 청소년문화센터는 일종의 하이라이트이며 소실점(消失點)인 셈이고요."

병풍처럼 둘러쳐진 건물 앞에는 광장이 펼쳐진다. 애당초 건축주인 서천군은 몰락해가는 구(舊)도심에 사람을 끌어들일 방편으로 '오픈 스페이스(열린 공간)'를 주문했다. 배 교수는 "건물이 광장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여성문화센터의 필로티(보만 세워진 공간), 종합교육센터의 캔틸레버(외팔보), 전부 유리창으로 마감된 건물 1층부가 그렇다"고 했다.

②전범에 가까운 건립 과정

사실 '봄의 마을'은 디자인보다 공공성과 공정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서천군에 따르면, 2004년까지 재래시장으로 쓰이던 이곳은 시장이 신도심으로 옮겨가면서 공동화(空洞化) 문제에 부딪혔다. 고민하던 서천군은 건축가인 주대관 문화도시연구소장에게 자문했고, 주 소장이 윤희진 교수에게 제안설계를 맡기면서 '봄의 마을'이 탄생했다.

주목할 건 이 과정에서 군청의 일방적인 개발 지시가 없었다는 점. 주민을 대상으로 '재래시장을 어떻게 개발하길 원하는지' 설문했고, 그 결과 '사람을 끌어들일 복합문화공간'을 원한다는 결론을 냈다. 보상 협의 기간 4년, 공사 기간 3년 등 총 7년여가 소요됐다. 배 교수는 "'봄의 마을' 건립 프로세스는 공공건축의 전범(典範)으로 두고두고 참고할 만하다"고 했다.

③통념적 디자인은 아쉬워

아쉬운 점도 있다. 배 교수는 "서천군이라는 지역과 이 건물·광장이 어울리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주변 건물들이 대체로 오래된 단층 건물들인데 지나치게 건물 스케일(크기)이 크다"는 지적이다. "주변 자연풍경이 상당히 아름다운데 그걸 살리지 못한 점도 아쉽다. 디자인이 다소 통념적인 것도 사실이다."

설계자인 윤희진 교수는 "설계에 앞서 서천에 쫓아갈 만하거나 참조할 만한 기존 건물이 없었다. 단순히 형태로 바라볼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전면 도로에서부터 절개면이 툭툭 잘리듯 건물을 늘어뜨려 서천의 시간적인 층위, 전통과 개발의 역사성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