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지급보증 없는 '안전한 PF' 등장 눈길

최근 부실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에 시공사의 지급보증이 없는 새 방식의 PF사업이 잇따라 선보여 성공 여부가 주목된다. 기존 PF사업의 경우 영세한 시행사가 PF대출을 갚지 못할 경우 시공사가 이를 대신 갚아주는 지급보증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계속된 부동산 경기 침체로 시행사가 대거 부도나면서 지급보증한 건설사가 줄줄이 쓰러지고 돈을 빌려준 금융권마저 동반 부실에 빠지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노출했다.

부동산 개발회사인 대원도시개발산업㈜은 27일 "기존 PF사업 방식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시공사 지급보증 없이 시행사의 자기자본과 신용만으로 땅값과 공사비를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대상 사업장은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동남권 유통단지 2-2블록에 짓는 '송파아이파크' 오피스텔(1403실)로 오는 30일 분양을 시작할 계획이다.

송파아이파크는 기존 PF방식과 달리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이 지급보증을 서지 않았다. 그동안 PF사업의 경우 시행사가 땅값의 10% 정도만 갖고 땅을 계약한 뒤 시공사 지급보증을 통해 금융기관에서 땅값 잔액과 일부 사업비를 조달했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는 시행사의 모기업(대원홀딩스)이 땅값의 80%(800억원)를 순수 자기자본으로 투자했다. KB국민은행 등 금융기관도 시행사의 신용과 사업성만 보고 1800억원대 PF자금을 빌려줬다. 대원홀딩스 최인녕 사장은 "모기업의 자금력이 충분하고 사업성도 좋아 굳이 시공사 지급보증이 필요 없었다"면서 "사업 준공 때까지 필요한 공사비를 모두 확보했다"고 말했다. 대원도시개발산업 측은 민간 개발사업에서는 보기 드물게 착공과 함께 시공사에 공사 선급금도 지급할 계획이다.

송파아이파크에 앞서 지난 2월 경기 광교신도시에서 분양한 '광교푸르지오월드마크'도 시공사 지급보증 없는 PF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공사인 대우건설은 단순 시공만 맡아 공사 진척도에 따라 공사대금을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송파아이파크 등 '지급보증 없는 PF방식'이 위기에 빠진 PF시장에서 시행사와 시공사·금융기관·소비자가 모두 윈윈(win-win)하는 새 비즈니스모델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기존 PF사업의 경우 시행사가 분양대금을 받아 공사비를 지급했기 때문에 시공사 입장에서는 분양률이 떨어지면 시행사 부도로 PF대출을 대신 갚아주고 공사비도 못 받을 위험성이 높았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쓰러진 건설사 대부분은 시행사 파산 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PF 지급보증 부담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송파아이파크는 시공사의 지급보증 의무가 없고 공사비도 확보돼 경기 침체로 분양률이 떨어지더라도 공사 중단 가능성이나 입주 지연 우려가 없어 분양 계약자도 안심하고 분양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급보증 없는 PF방식이 확산되면 향후 국내 부동산 디벨로퍼 업계에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처럼 불과 10억~20억원대의 토지 계약금만 달랑 들고 수천억원대 개발사업을 벌이는 이른바 '봉이 김선달'식 개발회사는 설 자리가 사라질 전망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전체 사업비의 25% 정도를 시행사가 자기자본으로 집어넣어야 PF대출이 가능한 '컨스트럭션 론(C-loan)' 제도가 보편화돼 우량 시행사가 아니면 개발 사업을 벌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부실 시행사가 많이 정리되기는 했다"면서도 "재무 건전성과 신용이 검증된 우량 디벨로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돼야 금융기관이나 소비자 피해를 줄이고 PF시장도 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