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연료 절감, 실시간 내비게이션도 큰 몫 한다

미국 미시간 오하이오 교통연구센터는 이달 초 교통 흐름에 관한 흥미로운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 디트로이트 머시대와 웨인주립대 연구진이 수행한 이 연구는 교통 혼잡과 도로 환경이 차량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것이다. 연구진은 실시간 교통 상황과 지리정보를 분석한 뒤 연료를 상대적으로 덜 쓰는 길로 운행했더니 연료소비를 13% 줄일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최단 경로를 찾아가는 기존 방식은 연료를 6%가량 절감하는 데 그쳤다.

차량용 내비게이션과 길 안내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는 차량이 늘면서 성능과 효율을 꼼꼼히 따지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어느 게 연료를 덜 들이면서 더 빨리 목적지까지 안내하느냐를 놓고 기업들의 기술 경쟁도 치열하다.

◇교통정보 반영한 길 안내로 온실가스 감축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가 진행됐다. 부경대 지능형교통시스템(ITS) 연구실과 SK텔레콤은 최근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 길 안내 방식에 따른 연료 소모량을 측정했다.

연구진은 실시간 교통정보를 반영한 내비게이션과 최단거리만 알려주는 일반 내비게이션으로 연료 소비량과 도착시각 정보를 수집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운행 중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도 계산했다.

휘발유 차량을 타고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삼양동 사거리 구간을 최단 거리 방식으로 운행했더니 약 27분간 7.28㎞ 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실시간 방식으로는 7.66㎞를 달렸지만 걸린 시간은 23분이었다. 속도도 최단거리 방식은 시속 15.95㎞였지만 실시간의 경우 시속 19.79㎞였다.

이런 개선 효과는 온실가스 감축에도 보탬이 됐다. 동대문과 삼양동 구간을 실시간 경로로 달린 경우 최단 경로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5.5~9.9%가량 줄었다.

실시간 길 안내가 이산화탄소를 덜 배출하는 건 운행 시간 때문이다. 최단거리를 택하면 이동거리는 줄어들지만, 평균 통행 속도는 실시간 길 안내가 더 빨라 이동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그만큼 엔진이 덜 돌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좀 더 긴 구간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청에서 사당역까지 이동할 때 실시간 방식이 최단거리 방식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8.33% 적었다. 서울 연신내사거리에서 청량리역까지 이동할 때도 실시간 길 안내는 최단거리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5.05% 줄었다.

◇'실시간 길 안내', 국제표준으로 인정

실시간 길 안내는 최단경로 길 찾기 기능을 제공하는 내비게이션보다 진화한 모델이다. 목적지까지 교통정보를 실시간 수집해서 길이 덜 막히는 길을 알려준다. 가만히 서 있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길을 조금 돌아가도 이동시간이나 연료 소모는 줄어든다.

SK텔레콤과 부경대는 총 384회에 걸친 운행 실험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고 한다. 최단거리보다 실시간 길 안내를 이용했을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평균 9.86%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동거리가 길수록 실시간 길 안내 방식의 연료 절감 효과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개선율은 단거리(7㎞ 미만)의 경우 7.56%, 중거리(7~12㎞)는 12.3%, 장거리(12㎞ 이상)는 13.07%로 나타났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이동거리가 길수록 정체구간이 많아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실시간 길 안내 방식의 효과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은 실시간 길 안내 서비스인 T맵 이용자들이 지난해 줄인 온실가스가 60만t(톤)에 이른다고 밝혔다. 연료 사용량도 총 24만kL(킬로리터)를 절감해 연평균 1인당 약 26L(리터), 금액으로는 5만4080원을 절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IT와 결합한 탄소저감 기술은 해외에서도 큰 관심사다. 지난 10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 환경 및 기후변화 표준회의'는 SK텔레콤의 '실시간 내비게이션 온실가스 감축 산정 방법론'을 국제 표준으로 승인했다. SK텔레콤 측은 "내비게이션 기술을 통해 연료를 절감하는 방법이 국제표준으로 인정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친환경 주행에 관심

환경부는 지난해부터 친환경 운전 안내장치(EMS)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친환경 운전 안내장치는 에너지 소모량, 연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실시간으로 표시해주는 장치다. 운전자가 급가속이나 급정지 같이 연료 소모를 늘리는 운전습관을 고칠 수 있다. 환경부가 지난해 100대의 차량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한 결과 평균 7.1%의 연비 향상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시내버스가 5.4%, 화물트럭 8.5%, 승용차는 7.3%의 연비가 올랐다. 올해는 2배 늘어난 200대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충청남도는 내년부터 친환경 운전 안내장치를 보급하기로 했다. 기기 가격의 50%를 지원하는 이 사업은 내년에 500대로 시작해 점차 보급량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국내 자동차 회사들도 친환경 운전 안내장치 보급에 나섰다. 르노삼성은 운전자의 주행습관을 초록·노랑·주황 등 3가지 색상으로 나눠 운행 상태를 표시해 준다. 회사 관계자는 "차량의 상태와 운전자의 습관을 분석해 연비 개선 효과를 더 높여준다"고 말했다. 한국GM의 하이브리드 차량인 알페온은 자동차 계기판과 디스플레이를 통해 에너지 사용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