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양극화… 건설·해운은 안 팔려

"채권이 비싼가, 주식이 싼가"가 증권업계의 논쟁거리가 될 정도로 올 한 해 채권시장은 달아올랐다. 현금이 필요한 상장사들도 주식시장 대신 금리가 낮아진 회사채시장을 두드렸다. 다만 지난 9월 26일 웅진그룹(웅진홀딩스)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회사채시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신용등급에 따른 금리 차이가 이전보다 벌어지고 있다. 쉽게 말해 회사채시장에서도 극도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상장사들, 불안한 주식 대신 금리 낮은 회사채로 자금 조달

올해 유상증자(새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 규모는 대폭 줄었지만,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은 늘었다. 증권 전문가들은 경제 상황이 불안하자 현금 확보에 나선 기업들이 금리가 낮아진 채권시장으로 눈을 돌려서라고 분석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집계를 보면, 올해 12월 납입예정분을 포함한 유가증권상장사의 전체 유상증자 규모는 약 1조3260억원. 이는 지난해(8조7110억원)의 15%에 불과하다.

반면 회사채 발행 금액은 지난해보다 증가했다. 코스콤 통계를 보면 이달 27일까지 회사채 발행금액은 70조371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5조90억원)보다 소폭 늘었다. 황원하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들은 회사채를 발행해 영업자금을 미리 확보하거나 이전에 높은 금리에 빌린 돈을 갚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채 금리가 계속 내린 것도 회사채 발행 규모가 커지는 데 한몫했다. 26일 기준으로 신용등급 AA인 3년 만기 회사채 금리는 3.16%로, 올 초(1월 2일·4.01%)보다 0.85%포인트 하락했다. 회사채가 주식보다 덜 위험하지만 기대수익률은 높은 투자처로 인기를 끈 데다, 올 들어 기준금리도 두 차례 인하됐기 때문이다.

◇웅진 사태로 회사채시장도 등급별 줄 서기

다만 최근 두 달 사이 회사채시장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신용등급 AA인 회사채와 A 등급 회사채 간 금리 차이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한 것. 최고등급인 AAA 회사채와 AA 등급 회사채 간 금리 차이는 0.11~0.12% 범위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AA 등급 회사채와 A 등급 회사채 간 금리 차이는 지난 9월 말 이후 0.1%포인트 가까이 벌어졌다.

증권 전문가들은 웅진그룹의 법정관리 신청 사건 때문에 투자자들이 A ~BBB등급 회사채와 건설·해운·조선 등 업종의 회사채에 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당시 웅진홀딩스의 신용등급은 A였다.

이 때문에 일부 대기업들은 채권 발행 금리를 이전처럼 낮게 잡았다가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당하기도 했다. 대림산업(AA-)과 현대건설(AA-), GS건설(AA-) 등 건설사가 발행한 회사채는 수요예측에서 기관투자자의 청약률이 0%를 기록했다. STX중공업(BBB+), 동국제강(A+), 대우조선해양(AA-) 등이 발행한 회사채도 인기를 끌지 못해, 남은 물량을 발행 증권사가 떠안아야 했다.

이왕상 우리투자증권 연구원 "투자자들이 건설 업종이나 A 등급 이하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에는 금리를 더 많이 붙여 주지 않으면 쉽게 손을 뻗지 않는 것"이라며 "일부 대기업들이 이런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채 3%대 금리를 고집하면서 회사채가 잘 팔리지 않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내수 소비 관련 기업과 삼성그룹 계열사는 회사채시장에서도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오리온(AA-)과 농협금융지주(AA+) 등 내수 관련 업체는 이달 순조롭게 회사채 발행물량을 전부 매각했다. 삼성물산(AA-)과 삼성토탈 등은 금리 3%대에 회사채를 발행했지만, 투자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