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구보, 20년 더 생존"

'구보씨의 삶'을 20년 연장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1964년 서울 수유리에서 사망한 것으로 호적에 올라 있는 소설가 구보(丘甫) 박태원(朴泰遠·사진)의 실제 사망연도를 1986년으로 고치려는 재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연은 이렇다. 1909년생인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 1930년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젊은 층에는 영화감독 봉준호의 외할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6·25전쟁 중 월북한 탓에 1987년 해금되기 전까지만 해도 크게 알려진 이름이 아니었다. 구보는 월북한 뒤에도 실명(失明)과 전신불수, 언어장애 등 큰 고통을 겪었다.

작가도 고생이었지만, 남한에 남은 가족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장(家長)의 부재로 생계도 막연한데 정보 당국은 월북 작가라며 감시를 멈추지 않았고, 관할 관청은 호구조사 때마다 구보의 존재를 물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집을 팔아야 할 형편이 된 구보의 부인은 1964년 10월 4일로 박태원의 사망 신고를 냈다. 구보의 장남 박일영(73·현 미국 거주)씨는 "어머니는 내가 미국으로 이민 가 있을 당시 아버지 사망신고를 냈다"면서 "아마 그렇게 해야 내가 자동으로 호주가 되어 매매가 가능했던 모양"이라고 했다.

미국 국적을 갖고 있어 북한 방문이 가능했던 아들 박씨는 1990년 드디어 평양 방문을 통해 구보의 생몰연도를 확인한다. 1986년 7월 10일 저녁 9시 30분 평양시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는 것이다.

박씨는 최근 구보의 사망연도를 정정해달라는 소송을 서울가정법원에 냈다. '박태원 문학전집'을 출간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다 보니 곧 아무나 구보의 작품을 출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현행 저작권법은 사후 50년. '1964년 사망'이라면 2014년에 저작권이 소멸하지만 정정 소송이 받아들여지면 저작권도 22년 더 늘어난다. 총 20권으로 예정한 '박태원 문학전집'은 내년부터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