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만원 유모차, 품질은 36만원짜리만도 못했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주부 이지민(33)씨는 한 살배기 딸을 태우고 다니기 위해 최근 '벤츠 유모차'로 불리는 169만원짜리 스토케 '익스플로리' 유모차를 샀다. 처음엔 만족스러웠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유모차가 너무 크고 무거워 혼자 힘으론 차 트렁크에 넣기 버거웠고, 도로 곳곳의 턱을 넘기도 어려웠다.

국내 소비자단체 '소비자시민모임'이 해외 소비자단체들과 공동 조사한 결과, 스토케 유모차는 품질 테스트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반면 40만원도 안 되는 중저가 유모차 '잉글레시나'는 성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유모차 가격과 성능 사이에 비례 관계가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스토케, 9개 항목 중 4개 낙제점

이번 조사는 소시모뿐 아니라 영국·홍콩·네덜란드·스웨덴·덴마크 등 6개국 소비자단체가 영국 전문 품질 테스트 기관인 '국제소비자테스트기구(ICRT)'에 공동 의뢰해 결과를 얻었다. 외국 소비자단체와 연계해 품질 테스트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시모는 "기계 장비를 통한 과학적인 평가와 전문 평가단을 통한 사용자 평가를 병행했다"며 "이전에 나왔던 그 어떤 소비자리포트보다 공신력이 있다"고 밝혔다.

테스트 결과, 스토케의 익스플로리는 100점 만점에서 56점을 맞아 끝에서 두 번째 등급인 '미흡' 수준으로 조사됐다. '아이를 눕히기 쉬운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편한지' 등 9개 항목을 조사했는데, 그중 4개 항목에서 60점 이하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재옥 소시모 회장은 "스토케의 경우 전반적인 품질이 매우 떨어졌다"며 "이런 유모차가 이렇게 비싸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스토케코리아는 "9개 조사 항목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방법은 하나도 밝히지 않아 소비자들에게 불필요한 혼돈을 준다"며, "지난 10년간 세계 50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유모차로 인정받아 왔다는 사실이 스토케의 우수한 품질력을 입증한다"고 밝혔다.

다른 고가(高價) 유모차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었다. 145만원짜리 '오르빗 G2'는 사용감·저장공간·이동편의성 등 6개 항목에서 60점 이하 점수를 받았고, 88만원대 일본의 '미라클 턴 프리미에'는 46점을 받아 최하위를 기록했다.

◇독점공급·허영심이 가격 올려

스토케 같은 유명 해외 브랜드 유모차가 몇백만원대를 호가하게 되는 이유는 독점적 유통구조 때문이다. '맥시코시' '퀴니'는 ㈜와이케이비앤씨가 수입해 보령메디앙스를 통해 판매한다. 스토케도 이달 한국지사가 세워지기 전까지 파파앤코라는 수입업체가 들여와 아가방을 통해 독점 공급됐다.

이 독점구조는 제품 간 시장 경쟁을 막아 가격을 높이는 결과를 불렀다. 유통 과정마다 발생하는 마진이 높은 것도 수입 유모차 국내 판매가격을 높인 요인으로 꼽힌다. 소시모가 올 3월 조사한 결과 유모차 수입업체의 유통 마진은 30%, 공급업체 마진은 15~20%, 유통업체(백화점) 마진은 30~35% 수준이었다. 여기에 물류 비용(5~7%), AS 비용(10%), 판촉 지원 비용(10%)까지 추가되면 가격은 더욱 올라간다. 예를 들어 30만원에 수입된 유모차가 이 과정을 거치면서 소비자가격이 100만원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저출산으로 여성 한 명당 출산 자녀 수가 1.22명으로 줄면서 '내 아이만은 무조건 최고로 키우겠다'는 엄마의 그릇된 허영심이 한국 소비자를 봉(鳳)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도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한국 유모차 수입액은 출산율이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2010년 185만달러(약 20억원)에서 작년 3912만달러(약 420억원)로 1년 사이 20배 이상 늘었다. 서울 A백화점에서도 유아·아동 해외 명품 신장률은 2008년 11.6%에서 작년엔 24.26%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