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국민소득 800달러 미얀마, 이 가난한 나라에 뭐가 있기에…

지난달 9일 미얀마 최대도시인 양곤에서 순환열차를 타고 둘러본 미얀마의 풍경은 1960년대 우리나라를 연상시켰다. 지은 지 40~50년쯤 돼 보이는 건물마다 갈라진 금이 선명했고 칠은 벗겨져 있었다. 도시 외곽은 더 열악했다. 나무판으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허름한 집에선 하수가 그대로 흘렀고, 마을 주변 노천 쓰레기장에선 악취가 진동했다. 객차를 연결하는 통로가 없어 수박 파는 소녀는 아슬아슬 난간을 붙잡고 옆칸으로 옮겨갔다. 최대 번화가로 알려진 시청 주변 공터엔 잡초가 무성했다. 수십 년째 방치된 도시처럼 보였다.

그런 미얀마가 재선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첫 방문지가 됐고 중국과 일본, 인도, 유럽 기업이 몰려오는 열강의 각축장(角逐場)이 됐다. 왜 그럴까?

◇부국에서 빈국, 다시 찾아온 기회

1960년대 미얀마(당시 버마)는 부국이었다. 당시 싱가포르 수상이 된 리콴유가 "버마만큼 잘살게 해주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1962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가 버마식 사회주의와 폐쇄 정책을 고수하면서 '역주행'이 시작됐다.

1988년 아웅산 수치 여사가 주도한 민주화운동으로 '양곤의 봄'이 오는가 싶더니 군사정부는 친위쿠데타로 정권을 연장시켰고 의회를 해산했다. 국호는 미얀마로 바뀌었다. 국가의 비민주적 운영에 서방 세계는 제재를 가했고 미얀마는 1인당 GDP 800달러의 아시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미얀마에 작년 3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새로 들어선 민선정부의 테인 세인 대통령은 과감한 개방을 택했고 수입 자유화, 국채 발행 등 개혁 조치를 내놓았다. 양곤에서 만난 대학생 카인레이는 "미얀마는 정치 경제가 모두 달라지고 있다. 새 정부는 아웅산 수치 여사에게 집권 기회를 줄 것"이라고 했다.

주변국의 시선이 달라졌다. 사실 미얀마는 투자 매력이 충분한 나라다. 원유, 천연가스를 비롯해 아연, 텅스텐, 구리, 니켈 등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다. 인구 6000만명으로 내수 시장이 작지 않다. 임금은 태국의 6분의 1 수준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얀마를 '아시아에서 마지막 남은 기회의 땅'이라고 했다.

◇중국·일본·미국 열강의 거센 구애

현재 미얀마의 '최대주주'는 중국이다. 국경을 2185㎞나 맞대고 있고 군사정부의 오랜 후원자 역할을 했다. 이미 많은 원유·가스전을 확보한 중국은 미얀마를 인도양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 한다. 지난 9월 현재 미얀마 투자 1위 국가는 중국(141억달러)으로 3위인 홍콩(63억달러)을 포함하면 전체 외국인 투자의 절반이 중국 자금이다. 미얀마에 가장 많은 물건을 파는 나라 역시 중국이다. 하지만 미얀마 내에서 "중국에서 벗어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국경 지역의 잦은 마찰은 양국 관계에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그 틈을 노리는 나라가 일본이다. 지난 3월 미얀마에 3000억엔의 채무를 탕감해 준 일본은 신규 차관 500억엔을 제공키로 했다. 통 큰 선심 정책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일본 재계는 지금 금융, 자동차, 농업, 유통 등 산업 전 분야에 걸쳐 미얀마 공략에 나섰다.

지난 9월 일본 종합상사 3곳은 양곤 동쪽에 위치한 띨라와 경제특구 3분의 2에 대한 독점 개발권을 따냈다. 2년 전만 해도 30년 넘는 고물 차량이 가득했던 양곤의 도로는 빠른 속도로 도요타·혼다 차량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여기에 미얀마인들에겐 군사정권 이전 미얀마 최대 지원국이었던 일본에 대한 좋은 인상이 남아 있다.

미국도 미얀마에 대한 각종 경제제재를 풀어 가면서 뒤늦게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GE, 코카콜라, 포드 등 대기업의 미얀마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미국은 중국 견제 목적 등 미얀마를 지정학적 요충지로 보고 있다.

◇한국에 관심 있는 미얀마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지난 10월 한국을 찾은 테인 세인 대통령은 "한국은 미얀마의 발전 모델"이라고 했다. 같은 식민지 경험을 갖고도 짧은 시간에 경제강국으로 부상한 한국을 배우고 싶다는 것. 새마을운동에 관심이 많은 미얀마의 공무원들은 군부 출신의 박정희 대통령을 잘 알고 있고, 젊은층들은 K팝과 드라마 등 한류에 익숙했다. 허름한 건물의 나이트클럽에선 시간당 한 번꼴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왔다. 대학생 킨민씨는 "외국인이 부쩍 많이 늘었지만, 한국인에 대한 느낌이 가장 좋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달 7일 양곤에서 열린 '한-미얀마 해양포럼'에 대한 미얀마 측의 관심은 뜨거웠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 미얀마 측에선 장관, 고위공무원, 교수, 학생과 현지 취재진 20여명이 참석해 양국 교류에 큰 기대를 표시했다. 찰리 탄 미얀마 해양대 총장은 김학소 KMI 원장에게 한국의 연구성과를 전수해달라면서 미얀마에 해운물류와 신재생에너지, 심해자원 개발을 위한 해양연구협력센터를 설립해달라고 부탁했다.

미얀마가 한국에 '애정'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와 개발 수익을 나눠 가질지는 미지수다. 우리나라는 올 상반기 미얀마의 여섯 번째 수입국이다. 태국·말레이시아보다 물건을 적게 팔았다. 밀려오는 열강의 돈과 호의(好意)에 우리나라는 언제든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김해용 주 미얀마대사는 "중국과 일본 등이 놀라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미얀마의 호감을 바탕으로 양국의 공생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미얀마에선 국제전화는 걸핏하면 끊겨도 인터넷 와이파이를 통한 카카오톡은 잘 터진다. 미개발 분야가 많다 보니 구기술과 신기술이 따로 없는 곳이다. '미얀마 전투'의 최후 승자는 누가 될지, 외부의 구애 공세에 놀란 미얀마가 다시 빗장을 지를지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