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맛을 깨우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감각을 디자인할 수 있을까? 얼핏 황당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실험적 프로젝트로 주목받고 있는 디자이너가 있다. 전진현(31)씨다. 지난 7월 네덜란드의 디자인아카데미 아인트호벤(DAE) 석사과정을 졸업한 그는 10월 졸업전시회에서 독특한 식사 도구 디자인을 선보였다. 음식을 입으로 옮기는 도구에 불과했던 숟가락과 포크 등을, 시각이나 후각 같은 감각까지 촉진시켜 맛을 극대화하도록 새롭게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다.

2일 아인트호벤의 전씨를 전화로 만났다. 그는 "음식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감각적으로는 더 강화된 풍미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며 "뇌를 속이는 프로젝트"라고 했다. 그의 작품은 지난달 말 유명 디자인 웹진 '디진(dezeen)'에 실리면서 화제가 됐다. "졸업전을 취재하러 왔던 디진 쪽에서 먼저 인터뷰를 요청해 작품이 소개됐다"고 한다. "캐나다의 한 TV 방송이 취재를 요청해 왔고, 미국, 싱가포르, 네덜란드, 프랑스 등 각국의 요리사·레스토랑으로부터 작품을 문의하는 이메일이 이어지고 있다"고도 했다.

전씨는 "이 프로젝트의 출발은 공감각(共感覺)"이라고 했다. 공감각은 소리를 들으며 빛깔을 떠올리는 것처럼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맛보기는 미각 외에도 청각, 후각, 시각, 촉각 등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공감각이라는 주제를 식사 도구 디자인에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빨간색과 분홍색 같은 색상이 먼저 눈에 띈다. 그는 "난색(暖色·따뜻한 느낌을 주는 색)이 식욕을 자극한다는 점을 응용한 것"이라며 "전체에 난색을 쓰는 것보다는 하이라이트처럼 일부에만 쓸 때 효과가 크다"고 했다. 둘레에 작은 돌기가 달린 숟가락도 있다. "이 숟가락을 쓰는 사람은 돌기의 질감을 느끼기 위해 보통의 숟가락보다 오래 입에 물고 있게 된다. 음식을 입 안에 오래 머금게 되면 후각의 작용이 강화돼 맛을 더 잘 느끼게 된다"고 한다.

속이 빈 세라믹 숟가락은 청각을 활용한 디자인이다. "속이 찬 숟가락은 그릇에 부딪칠 때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를 내지만 속이 빈 숟가락은 기분 좋게 울리는 소리가 나 식욕을 돋운다"고 한다. 또 "표면이 거친 숟가락은 혀의 미뢰를 자극해 맛을 더 잘 느끼게 한다"는 설명이다.

"사람들에게 이 도구들로 음식을 먹게 해봤어요. 계속 들여다보기도 하고, 숟가락을 빠는 아기들처럼 입에 물고 있는 사람도 있더군요. 각자 자기가 어떤 감각에 민감한지, 어떤 감각을 많이 사용하는지를 보여준 거죠."

전씨는 "공감각이 발달한 사람, 먹는 데 집중 못 하는 어린이를 키우는 보육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며 "이 작품을 더 정교하게 발전시켜야겠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장애인을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고로 특정 감각을 잃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프로젝트로 발전시켜보고 싶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