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국제심판 되겠다는 21년 전 꿈 이룬 대사

외교통상부 18층에 있는 마영삼(56) 평가담당대사의 방 한쪽엔 표지에 'ITTF'라 쓰인 영어 문서들이 잔뜩 쌓여 있다. 국제탁구연맹(ITTF)에서 배포한 경기 규칙 설명 자료다. 30년 동안 세계를 누빈 외교관의 업무 문서들 사이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 대사는 지난 6월 국제탁구연맹이 공인하는 탁구 국제심판 자격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그는 "21년 전 목표했던 꿈을 이뤘다는 생각에 짜릿했다"고 말했다. 마 대사의 명함엔 '평가담당대사' '공공외교대사'와 함께 '탁구 국제심판'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마 대사의 탁구 사랑은 학창 시절부터 시작됐다. 마 대사는 "별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근처 탁구장에서 친구들과 공을 치는 게 그렇게 재미있었다"며 "고 3이던 1973년 사라예보 탁구선수권대회에서 여자 대표팀이 우승했을 때 온 나라가 열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대학 진학과 외무고시 합격, 외교관 생활 동안 멀어졌던 탁구와는 1991년 다시 만났다. 방글라데시에서 근무하던 마 대사가 청소년 탁구선수권대회를 위해 방글라데시를 찾은 대표팀의 현지 생활을 돕게 된 것이다. 대표팀 일행 중에는 탁구 국제심판 자격으로 심판을 보기 위해 온 고교 교사도 있었다. 마 대사는 "경기장에서 심판복을 입고 세계적 선수들 경기를 지휘하는 게 정말 멋있어 보였다"며 "나도 이걸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에 이어 유엔에 파견되는 등 외국 생활을 하느라 마 대사의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2000년 드디어 국내에 들어온 마 대사는 집 앞 탁구클럽에 등록한 후 주말마다 탁구 연습을 하면서 심판 공부도 했다. 연수교육을 통해 3급 심판 자격증을 발급받은 뒤에는 주말에 열리는 탁구대회를 찾아가 직접 심판을 봤다.

"심판 보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더라고요. 탁구는 비디오 판독이 없어서 모든 판정이 심판에 달려 있습니다. 하루 7∼8경기 연속해 심판을 보는데 선수보다 더 긴장했어요."

그렇게 주말마다 대회를 찾아다니며 심판을 본 경기가 지금껏 200여 경기에 달한다. 2008년 이스라엘 대사로 일할 때는 이스라엘 탁구협회를 찾아가 한국 탁구 심판 자격증을 보여주며 탁구 심판을 해주겠다고 제안, 이스라엘 선수들의 경기 심판을 보기도 했다.

올해 1월부터는 매일 퇴근 후 탁구 국제심판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 마 대사는 "탁구 세부 규정이 워낙 많아 열심히 외우고 또 외웠다"고 했다. 지난 4월 치러진 시험에선 응시자 50여명 중 10여명만 합격했다. 마 대사는 "헷갈리는 문제가 많아 합격 가능성을 50％ 정도로 봤는데 다행히 합격했다. 영어 시험지와 한글 시험지를 같이 주는데 헷갈리는 부분은 영어와 한글을 동시에 보면서 풀 수 있어 조금 유리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마 대사는 탁구 덕에 일이 더 즐겁다고 했다. 그는 "일에만 매달리면 지친다. 후배들이 일 외에 취미 하나씩은 가졌으면 좋겠다. 물론 탁구를 강력 추천한다"고 했다.

마 대사의 다음 목표는 탁구 3부 진입이다. 아마추어 탁구에서 1∼2부는 선수급, 3부는 준선수급, 4부는 '동네 클럽에서 한 가닥 하는 수준'이다. "조금만 젊었어도 2부까지 욕심을 부리겠는데, 조금 힘들 것 같네요. 즐겁게 연습해서 3부 선수 겸 탁구 국제심판으로 은퇴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