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債 땡처리 물량 1조7050억 대기… 채권시장 초긴장

회사채 발행 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 증권사들이 떠안고 있는 회사채 1조7000억원어치 이상이 연말 결산을 앞두고 '땡처리(급매)' 물량으로 대기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채권 시장에 땡처리 회사채가 쏟아져 나올 경우 채권값이 떨어지고(금리 상승) 우량 채권마저 도매금으로 싸구려 취급을 받아 회사채 시장이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 75일. '웅진 쇼크'가 초한파 주의보를 울리며 회사채 시장을 덮치고 있는 것이다.

9일 금융감독원이 긴급 조사를 벌인 결과 11월 한 달에만 1조7050억원의 미(未)매각 회사채가 생겼다. 기업의 회사채 발행을 주관했던 증권사가 수요자를 찾지 못해 대신 떠안은 회사채를 가리킨다. 회사채 시장의 한파는 지난 9월 26일 신용등급 A-(투자적격등급 10개 중 상위 일곱 번째)였던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후 생겨난 새로운 풍속도다.

그러나 '웅진 쇼크' 이후 은행, 증권, 보험,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들이 회사채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한 금융회사 임원은 "투자한 채권 가격이 내려가면 시말서를 쓰면 되지만 투자한 채권이 부도가 나면 사표를 써야 한다"며 "웅진 사태 이후엔 과감하게 투자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신용평가회사들이 '투자해도 괜찮다'고 보증했던 A등급 회사채가 부도나 다름없는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1997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증권사들, 손실 감수하고 회사채 '땡처리'

증권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별로 많게는 1000억~2000억원, 적은 곳도 수백억원 대의 미매각 회사채를 떠안고 있다. 발행 때 안 팔린 회사채를 '땡처리' 하려면 회사채 가격을 깎아서(금리를 올려서) 팔아야 한다. A증권사 IB 담당자는 "3년 만기 채권의 경우 0.1%포인트 금리를 올려 팔면 100억원당 3000만원의 손실이 생긴다"고 말했다.

증권사로서는 손실을 안 보려면 시장이 좋아질 때까지 갖고 있어야 하지만, 회사채 발행을 중개하는 팀에 보유 한도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물량이 발생한다. 보유 한도는 대형사는 3000억원, 중소형사는 1000억원 정도다. 계속해서 미매각 회사채를 떠안고 있으면 한도 때문에 다른 회사채를 중개할 여력도 없어지기 때문에 처분해야 한다. 증권업계에서는 연말 결산이 다가오는 이달 중순 이후 회사채 '땡처리'가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실제 유통 시장에선 회사채 거래가 늘어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장외 회사채 거래는 15조2000억원어치가 발생, 전달보다 9000억원 불었다.

◇회사채 발행 시장은 더욱 얼어붙어

반면 회사채 발행 시장은 A등급 이하 회사채 기피증이 퍼지면서 더욱 얼어붙었다. 오는 11일 3000억원의 회사채 발행을 앞둔 포스코건설은 지난 6일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 예측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채권을 살 의사가 있다고 답한 기관 투자자는 6곳에 불과했고, 수요액도 600억원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1000억원어치의 5년 만기 채권은 사고 싶다는 수요자가 하나도 없었다. 포스코건설의 신용등급은 건설사 중 최고인 'AA-'(상위 4위 등급). 지난달부터 GS건설·현대건설·대림산업 등 'AA-' 신용등급의 건설사들이 회사채 발행을 위해 수요 예측 조사를 벌였지만 살 의사가 있다는 기관 투자자는 한 곳도 없었다.

건설사뿐만이 아니다. 신용등급이 'AA'(상위 3위 등급)인 CJ제일제당이 3000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5일 수요 예측 조사를 했는데, 16곳에서 1900억원어치에 대해서만 살 의사가 있다는 회신이 왔다. 'AA+'(상위 2위 등급)인 SK에너지는 회사채 수요가 적어 지난 6일 발행 예정액 5000억원 중 2000억원을 줄인 3000억원어치만 발행해야 했다. 이젠 A등급보다도 높은 AA등급까지 투자자의 발길이 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회사채 발행액은 6조5000억원으로 10월보다 1조3000억원이 줄었다. A등급 이하 회사채 발행도 한 달 사이 2조원 가까이 줄었다. 김대영 우리투자증권 상무는 "시장에선 가장 부도 확률이 높은 신용등급이 BBB등급이 아니라 A-라고 얘기할 정도로 신용평가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있다"며 "신용평가 시장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수술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