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마크 단 광어… 명품수산물, 블루오션 열다

모래 밑에 숨어 있던 광어(넙치)가 밥 먹을 시간이 되자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낯선 사람이 있는데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김녕수산 강동은(68) 대표가 먹이를 뿌리자 어른 팔뚝만 한 광어가 수면 위 20㎝까지 뛰어올랐다. 7개 양식 수조 위로 하얀 물보라가 일었다.

강 대표는 "단위 면적당 마릿수가 일반 양식장보다 적기 때문에 광어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주위에 사람이 있어도 덜 예민하다"고 말했다.

일반 양식장은 광어에 노르스름한 색을 내기 위해 노랑 페인트를 칠한 콘크리트 수조에서 키운다. 주변과 몸색이 비슷해지는 광어의 습성을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강 대표는 황토 바닥에 15㎝ 두께 모래를 깔아 키운다. '모살 광어' 브랜드도 만들었다. 모살은 제주 방언으로 '모래'라는 뜻. 6년 전부터는 아예 항생제도 안 쓴다. "광어가 2㎏까지 자라는 데 1년 반이 걸립니다. 아무리 커도 병에 걸리는 놈은 버려요. 주위에서는 '약(항생제) 쓰면 멀쩡해진다'며 아까워하지만 다른 양식장과 똑같이 해서는 미래가 없어요."

강 대표는 올해부터 백화점과 유명 식당과 호텔에 납품하고 있다. 생육이 늦어 일반 양식장에 비해 양식 기간이 한 달 길지만 가격을 20% 더 받는다.

원료비 상승, 수입 수산물 증가로 도전에 직면한 수산업계가 '명품 수산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농업·축산업의 전유물이던 친환경 인증을 수산물에 도입하고, 고급 어종에 대한 양식 연구도 활발하다. 전체 국내 수산업 시장규모로 볼 때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고급화와 수출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는 개척자들이다.

◇친환경 김 업체 매출 3년 만에 4배

현재 정부가 친환경으로 인증한 수산물은 김·굴·홍합·넙치 등 9종이다. 김이 맨 먼저(2010년) 인증을 받았고, 인증 업체 수도 많다. 일반 양식 업체는 산성(酸性) 물질로 김 사이에 붙은 수생 생물을 제거해 왔다. 잔류량은 허용치 미만이지만 바다를 오염시킨다.

친환경 업체들은 김을 물 위로 드러나게 해 햇볕으로 수생 생물을 제거한다. 비용이 30% 더 들지만 소문을 타고 수요가 늘고 있다. 김 양식 어민 110명이 세운 장흥무산(無酸)김㈜은 2010년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매출은 2009년 3억원에서 지난해 9억7000만원, 올해는 12억원을 기록 중이다.

신세계 안철기 수산바이어는 "수산물의 이력,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커지면서 친환경 수산물이 인기"라고 말했다.

◇장어 대량 양식 길 열려…유럽에 넙치 활어 수출도

고급 어종 생산을 위한 연구도 활발하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최근 일본(2002년)에 이어 세계 2번째로 민물 장어 치어 생산에 성공했다. 민물장어는 자연산 치어를 잡아서 양식한다. 대만산 치어를 들여오지만 공급이 부족해 0.2g짜리 치어 1㎏(약 5000마리)이 3500만원을 호가한다. 중국인들이 장어를 먹기 시작하면서 외국산도 구하기 어려워져 대형마트는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국립수산과학원 김대중 박사는 "금값과 맞먹는 치어의 수입 대체 효과도 있고, 양식 규모도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공 과정을 차별화한 업체도 있다. 일광수산은 중국산 조기와 가격 경쟁에 밀리면서 2년 전 부도가 났다. 임직원들은 명태 어획량이 줄어 빈 황태 덕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황태 덕장에서 굴비 2만 마리를 말리고 있다. 고강석 본부장은 "창고에서 건조하는 일반 굴비와 달리 대관령 바람에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기름기가 빠진 '명품 굴비'"라며 "설 선물용으로 백화점에 납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급화는 수출의 발판이 된다. 신풍수산은 제주 지역 광어 양식 농가 가운데 처음으로 HACCP(식품 위해 요소 중점 관리 기준) 인증을 받고, 10월 친환경 수산물 인증도 받았다. 수백만원을 들여 사료 하나하나의 성분 검사를 받고, 매일 40여 가지 항목에 달하는 '양식 일지'를 작성해야 했지만 이런 노력 덕분에 최근 유럽 수출길이 열렸다.

한우진 대표는 "유럽은 미국, 일본에 비해 수산물 수출이 훨씬 까다롭다"며 "수출 국가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