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혁·조인성·전지현·송중기… 다 내 제자랍니다"

김선아, 장혁, 박시후, 전지현, 조인성, 신민아, 송중기….

하나같이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톱 배우들이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같은 연기 스승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15년간 연극배우 생활을 한 뒤 현재 연기학원 iHQ 캐스트 원장으로 있는 안혁모(43)씨다. 정작 안씨 본인은 영화 4편에 단역으로 출연한 게 전부라 대중에게는 얼굴이나 이름 모두 낯설다. 하지만 현재 활동 중인 스타급 배우 100여명이 그의 지도를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최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젊을 땐 TV나 영화에서 직접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다는 욕심도 컸는데 내 외모로는 한계가 있어 연극을 했다"며 "지금은 내 가르침을 잘 따라주면서 대중의 환호를 받는 제자들을 보며 얻는 대리만족이 무척 크다"고 했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97년 같은 과 선배인 정훈탁 iHQ 대표의 부탁으로 연기 교습을 시작했다고 한다. 첫 제자는 전지현과 장혁. 낮에는 경기도립극단에서 배우로, 밤에는 서울 일원동 배우 합숙소에서 교사로 살아가는 '이중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극단에서 1년에 130회씩 무대에 섰으니 꽤 잘나가는 연극배우였죠. 그런데 밤에 또 후배들을 가르치려니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재미가 생기더군요. 연극과는 다른 TV나 영화 연기법을 혼자 연구하면서 얻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는 신인들의 경우 일주일에 2~3회씩 정기 교습을 하기도 하지만 스타급 배우들은 촬영을 앞두고 같이 대본을 보며 작품 해석을 하는 데 치중한다고 한다. 최근 그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제자는 박시후와 송중기. 올 하반기 가장 뜨거운 남자 스타들이다. 그는 "중기는 처음 봤을 때 솜털이 보송보송한 게 너무 예쁜 데다 붙임성도 좋아 호감이 갔다"며 "이해력이 좋아서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알아듣는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다만, 대사를 할 때 윗입술에 너무 힘이 들어가 발음이 흐트러지는 게 문제였어요. 말하면서 숨소리가 많이 들어가 울림을 주지 못한다는 점도 아쉬웠죠. 드라마 '착한 남자' 촬영을 앞두고 그런 점을 교정하는 데 신경 썼더니 아주 좋아졌습니다. 영화 '늑대소년'때는 좀 막막했죠. 대사가 없으니까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싶더라고요. 결국 동물원에서 본 늑대를 떠올리며 상황에 따른 눈빛과 동작의 속도를 함께 연구했습니다."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서 코믹 연기로 호평받고 있는 박시후에 대해서는 "카메라 울렁증이 심해서 처음에 같이 고생을 많이 했었다"며 웃었다. "제가 교습을 할 때는 늘 가정용 캠코더로 배우들의 연기를 촬영하거든요. 그런데 신인 시절 시후는 이 캠코더만 켜도 몸이 바짝 얼어붙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정말 열심히는 하는데 연기력이 빨리 늘지는 못했죠. 하지만 다 옛날 얘깁니다. '청담동 앨리스'의 경우 1, 2부에서 리액션이 정확지 않아 제가 전화로 싫은 소리를 좀 했지만 지금은 본인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영화 '도둑들'의 전지현에 대해선 "지금까지 만나본 여배우 중 가장 끼가 넘치고 잘 노는 사람이 바로 전지현인데 그런 천성이 작품을 통해 제대로 구현됐다"고 했다. "한마디로 지현이가 마음껏 놀 수 있는 무대가 됐던 거죠."

"제자 중 최고의 배우는 누구냐"고 묻자 그는 한참 고민했다. 그러더니 여자 배우 중에서는 김선아를 꼽았다. "가르침을 하나하나 잊지 않고 실생활에서 실천한다. 진정성이 담긴 연기는 김선아를 따를 자가 없다"고 했다. 남자 배우는 더욱 어려운 듯했다. "'추노'의 장혁, '비열한 거리'의 조인성이 떠오르네요. 대단한 노력파인 데다 작품을 통해 발산하는 폭발력이 송강호, 최민식 선배 못지않은 수준이었죠."

수많은 연기 지망생에게 그가 남기고 싶은 말은 "연기는 후불제"라는 짧은 문장이었다. "지금은 고되더라도 자신을 믿고 꾸준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게 돼 있어요. 김상호, 고창석, 장영남 같은 훌륭한 배우들이 뒤늦게 빛을 보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