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에 녹아든 예술… 기업가치 높이는 '효자' 마케팅

프랑스 5대 와인으로 꼽히는 '샤토 무통 로칠드'는 와인 애호가 사이에 독특한 라벨 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1945년부터 피카소, 샤갈, 미로, 칸딘스키 등 당대 최고의 화가가 그린 그림을 라벨 디자인에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샤토 무통 로칠드의 와인 병만 수집해 놓으면 미술계 거장(巨匠)의 작품을 안방에서 감상할 수 있는 셈이다.

예술과 경영의 접목은 제품 인지도를 높이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다국적 생활용품업체인 유니레버는 인수·합병(M&A)에 따른 조직 내 갈등을 극복하려는 목적으로 예술을 활용하고 있다. 정식 직원으로 임명된 예술 감독의 진행하에 직원들이 연극을 벌이는 '캐털리스트'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은 연극을 함께 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고, 팀워크를 다져 정서적 이질감을 해소하고, 결국 조직 화합을 이루게 된다.

많은 선진 기업이 최근 예술과 경영을 접목하는 '아트 마케팅(art marketing)'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를 통해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고객 관계를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높이는 등의 다양한 효과를 얻고 있다.

◇"예술가와 협업으로 시장 선점, 기업가치 제고"

대표적 아트 마케팅으로는 제품에 예술성을 부여해 소장 가치가 높은 '일상의 예술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유형이 꼽힌다. 유명 예술가와 공동으로 제품을 디자인하거나 기존 예술 작품을 상품에 융합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다. 이 경우, 예술가의 고유한 개성을 살리면서도 자사(自社) 제품이 추구하는 스타일에 부합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세계적 패션업체인 루이뷔통이 그라피티(벽화 낙서) 화가 스티븐 스프라우스,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 설치 미술가 구사마 야요이 등의 예술가와 공동 작업을 통해 브랜드 혁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미 루이뷔통 제품을 보유하고 있는 고객이 다시 한 번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갈색 모노그램 중심의 전통 디자인에 현대적 이미지를 더해 타깃 연령층을 낮추려는 시도이다.

유명 예술가와의 협업은 최근 고가 패션 제품뿐 아니라 중저가 일상용품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가전제품은 차갑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보석 디자이너 마시모 주끼와 함께 고급형 냉장고를 출시했다. 중저가 의류 업체인 H&M은 칼 라거펠드, 베르사체 등 정상급 디자이너를 영입해 명품의 대중화를 선도했다. 미국의 팝아트 작가 제프 쿤스는 화장품 용기(키엘), 조명등(타깃), 커피잔(알레시) 등 다양한 일상용품의 디자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아트 마케팅은 예술을 주제로 문화적 체험 공간을 만드는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매장을 단순한 제품 구매 공간이 아닌 미적 경험이 가능한 복합 예술 공간으로 연출하는 것이다. 프라다의 에피센터(Epicenter) 스토어는 매장이 무대와 객석으로 변형되도록 디자인됐다. 쇼핑과 더불어 콘서트, 영화, 갤러리 등 예술 체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조직 내 갈등 해소에도 활용

고객 관리 분야에서는 '아트슈머(ART+conSUMER)'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예술적 감각을 갖춘 고객의 심미안(審美眼)을 신제품 개발이나 맞춤형 상품 디자인 등에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업체인 피아트는 고객의 요구 사항을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 온라인 소비자의 아이디어 25만개를 검토한 뒤 새로운 자동차인 '친퀘첸토'를 출시했다. 맥주업체인 하이네켄은 온라인 프로그램인 '그린 룸 세션'을 운영, 고객이 좋아하는 음악을 직접 편곡하고 친구와 공유하도록 해 브랜드 애착도를 높이고 있다.

예술은 조직 구성원에게 창의력과 혁신 동기를 부여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직원들을 예술 활동에 참여시켜 일상적 업무 환경에서는 깨닫지 못한 창조력과 팀워크 등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BNP 파리바은행은 직원 간 소통과 팀워크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2주 동안 회사의 핵심 가치를 담은 청동 조형물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영국의 존 루이스 백화점은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는 고객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연극배우의 지도하에 해당 직원들이 상황극을 펼치게 한 뒤 이를 고객 서비스에 반영하는 방법을 활용했다.

아트 마케팅은 진정성 있는 예술 후원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유용하다. 최근 기업의 예술 후원 활동은 단순한 기부 차원을 넘어 기업과 예술이 함께 발전하고 성장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또 예술가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 주민들에게 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제공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프랑스 EDF 에너지는 시골 초등학교에 미술가를 파견해 어린이들과 공동으로 설치 예술작품을 만들고, 이 작품을 회사 건물에 전시해 기업에 대한 긍정적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