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배워 인생역정 책으로 내니 행복해요"

'까막눈'이던 충북 보은 지역 할머니들이 한글학교에서 글을 배워 자서전을 펴냈다. 보은군 보은읍에 자리 잡은 '흙사랑 한글학교'의 할머니 수강생 9명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역정을 소개한 '웃음과 감동, 나만의 자서전'(무진장출판)을 발간했다.

할머니들이 글을 배운 흙사랑 한글학교는 2000년부터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무료로 운영해온 교육기관이다. 할머니들은 보은 읍내 상가 건물에 마련된 강의실에서 매주 월~금요일 글을 배웠다. 50여명에 달하는 수강생 대부분은 60대 이상 할머니들이다. 평균연령은 70세이며 조점순(83)씨가 최고령자다. 이 가운데 5명은 이곳에서 한글을 깨우쳐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3명은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이번에 자서전을 낸 수강생 대표 임재선(70)씨는 선머슴처럼 살아온 어린 시절과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의 삶을 글에 담았다. 김상순(77)씨는 보은군 삼승면 천남리에서 태어나 같은 동네에서 결혼해 살아온 과정을 적었다.

이후순(60)씨는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풀어냈고, 장양자(71)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며느리를 사랑으로 돌봐준 시부모님에 얽힌 에피소드와 자식 사랑을 글로 표현했다. 박순희(72)씨는 어린 시절 함께 뛰어놀았던 친구와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 임인예(78)씨는 글을 배우지 못해 설움을 겪었던 젊은 시절 이야기와 뒤늦게 배운 한글에 대한 애정을 담아냈다. 함영복(75)씨는 먼저 하늘로 보낸 작은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 한구임(75)씨는 남편과 아들딸이 있어 행복했던 삶, 손순덕(72)씨는 한국전쟁 때 겪은 힘겨운 나날을 책 속에 담았다.

자서전에는 지역의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등과 함께한 전통문화 체험을 비롯해 오장환문학관, 삼년산성, 대추축제 등 답사 사진도 넣었다. 임재선씨는 "글방에서 3년 동안 한글을 배워 비로소 생각을 글로 자유롭게 표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글학교 박옥길(46) 사무국장은 "자서전에는 학교 문턱도 밟지 못한 할머니들의 고단했던 삶과 글을 깨우친 후 느낀 감동과 환희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매우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무에서 유를 창조한 분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글학교는 22일 오후 7시 보은문화원에서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