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 염 봉사하며 '욕심 버리자' 느꼈죠

"삶의 마지막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어야 해요"

지난 7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백병원 입관실. 조광제(61)씨가 솜에 알코올을 묻혀 80대 할머니 시신을 구석구석 닦았다. 얼굴엔 분을 바른 다음 다시 닦아내자 화색이 돌았다. 가슴에 흰 국화꽃을 덮어주자 편안하게 잠든 것처럼 보였다. 조씨가 염을 해준 이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혼자 살다가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조씨는 고인을 위해 무료로 2시간 동안 입관식을 치러줬다. 조씨는 "고인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난 걸 보니 행복하다"고 했다.

조씨는 노숙자, 독거노인 등이 숨지면 그 시신을 닦아 수의를 입히는 염(殮) 봉사를 17년째 하고 있다. 매년 60~70명씩 지금까지 1000여명의 장례를 도왔다. 그는 이들을 위해 대가 없이 장례를 치러줬다.

조씨의 원래 본업은 보험회사 대리점 점장으로 장례와 무관하다. 그런 조씨가 염 봉사를 시작한 건 1995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서울 성북구 성자복지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 등을 돌보는 호스피스 봉사를 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그는 숨을 거둔 채 실려온 늙은 행려병자를 보게 됐다. 밤에 고가다리 밑에서 잠을 자다 동사한 사람이었다. 그 모습이 불쌍해 보여 그는 염 봉사를 결심했다. "아무리 천대받고 고통에 죽어간 사람이라도 죽을 때만큼은 귀하게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병원 영안실에서 염하는 사람으로부터 기술을 배웠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죽은 사람의 모습은 언제나 낯설기 때문이다. "망자(亡者)가 행여라도 떠나는 순간 마음이 상할 수 있어 절대 찡그려서는 안 돼요."

조씨에겐 기억을 지우는 습관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숱한 사람들을 위해 염을 했지만 그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기억이 남으면 더 이상 염하는 일을 할 수가 없어요. 망자의 모습은 관 뚜껑을 닫는 순간 습관적으로 기억에서 없애요." 스스로 최면을 거는 셈이다. 그는 염을 해준 이가 어떤 사람인지 묻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일주일이면 한두 차례 숨진 이들을 보며 조씨에겐 인생의 지혜가 하나 생겼다. "세상을 떠날 땐 모두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아요.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더라고요."

염을 해주는 일은 조씨에게 봉사이기만 한 건 아니다. 조씨는 염을 할 때 시신 얼굴을 펴준다. 때로 곱게 화장을 해주며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단장한다. 1년에 한 번쯤 어린 아이를 염해줄 때는 하얀색 천사 옷을 입힌다. "염을 해주는 일은 죽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산 사람이 위로받기 위해서예요. 관에 들어간 사람이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으면 그의 삶이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처럼 느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