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전사(해방전후사의 인식)'도 '재인식(해방전후사의 재인식)'도 낡았다… 이젠 '탈냉전(탈냉전사의 인식)'이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해전사)'으로 우리 사회를 읽어내기에는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분석틀이 필요한 때입니다. 2012년 현재 한국 사회의 기원을 분석하는 틀은 '탈냉전'이고 '세계화'입니다."

1980년대 초·중반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던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 그에 대한 우파적 대응으로 2006년에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책세상)에 이어, 우리 사회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읽은 책이 나왔다. '탈냉전사의 인식'(한길사). 8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닌 '해전사 세대' 학번을 주축으로 16명의 중도 보수·진보 학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대선 투표 열기가 뜨겁던 19일 책 편집을 주도한 김호기(연세대 사회학)·장훈(중앙대 정치학)·강원택(서울대 정치학)·박인휘(이화여대 국제정치학) 등 4명의 교수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이 '탈냉전사' 집필을 마음먹은 것은 2012년 현재 우리 사회의 기원을 추적하려는 노력이었다. "해전사 필진은 대부분 60년대 학번들이었고, 재인식의 주축은 70년대 학번들이었다. 21세기 우리 사회의 문제 기원을 제대로 분석하기에는 제3의 대안적 시각이 필요했다. 90년대 전후로 우리 사회의 조정원리는 근대성(산업화+민주화)에서 세계성으로 이동했다"(김호기)는 것.

◇탈냉전·세계화가 분석 키워드

성장 동력의 위기, 사회 양극화, 가족 해체, 개인주의, 비정규직 양산 그리고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등은 모두 1990년대 세계화 이후 20년간 벌어진 일들. 여기에 국내적으론 노태우 정권 시절의 3당합당은 정치체제를 권위주의에서 본격적인 민주체제로 바꿔놓았고, 우리는 지금 그 기반 위에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전제다. "기존의 세계화 분석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많았다. 반면 세계화가 어떻게 수용되고 채택됐는지 과정에 대한 설명은 소홀했다"(박인휘) "87년 민주화 이전과 이후로 나눠 보는 것도 단편적 시각"(장훈)이라는 문제의식이다.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민주화의 태동과 정치지형의 변화' '냉전 해체 전후 세계와 대북외교' '탈냉전기 고도성장의 빛과 그림자' '개인·시민사회의 등장과 전환된 역사인식' 등 4부로 나눠 정치, 외교, 안보, 남북문제, 경제, 사회문제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이념 대신 '세계화'를 화두로 돌아본 20년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강원택 교수는 1990년 3당합당을 "노태우 등 신주류가 과거 권위주의체제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민주화된 환경에 적합한 보수정치를 이끌어내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노태우 정부는 냉전적 반공주의에서 벗어나 북방정책 등 탈냉전적 국제질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으며 김대중 역시 지역주의 구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대 및 통합을 통해 이념적 진보성을 강화했다고 분석한다. 현재의 정치지형은 3당 합당의 기반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이 시기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에서 개인과 시민이 등장한 점도 학자들이 주목한 대목이다.

◇보수·진보 진영 대립 여전

학자들은 이번 대선을 "이념 대립이라기보다는 진영 간 총력전"(장훈)이라면서 "장기적으로 탈이념 혹은 이념의 통섭이 나타날 것"(김호기)이라고 봤다. 또한 기본 체제의 틀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면 한국적 보수와 진보 간 대립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다. "대북정책도 햇볕정책과 엄격한 상호주의라는 냉·온탕을 오가면서 학습효과가 생겼다"(강원택)는 것.

◇'정통 보수'-'정통 진보' 간 소통 필요

중도적 입장에서 집필한 학자들은 대화와 소통을 강조했다. "정통 보수, 정통 진보들 사이의 소통은 활발하게 이뤄진 것 같지 않다. 정치권의 대립을 비판하기 전에 학계 내부의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김호기)는 반성이었다. 장훈 교수는 "학자들의 활동조차 그간 자기 진영에만 호소하는 경향이 있었다. 분석은 독자적인 가치관을 토대로 하되 전체를 의식한 활동이 돼야 하지 않나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책은 하나의 사례라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