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파워 클래식] 천재가 쓴 가장 우스꽝스럽고, 동시에 가장 우울한 책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돈키호테'는 오른손으로 쓰인 작품이다. 세르반테스가 레판토 해전에서 왼손을 잃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가 왼팔을 잃지 않았더라도 '돈키호테'를 썼을 거라고 생각한다. 팔 하나를 잃는다고 해서 갑자기 재미있고 멋진 글을 쓰게 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팔을 잃었고, 해적에게 사로잡혔으며, 다섯 번의 탈옥 시도를 했고, 노예로 팔려갈 뻔했으며, 종교 단체의 보상금으로 석방되었다가, 다시 공금 횡령죄를 뒤집어쓰고 간 세비야의 감옥에서 마침내 '돈키호테'를 쓰기 시작한다. 그의 나이 오십 즈음이다. 돈키호테의 나이이기도 하다. 1597년이다.

나는 궁금해졌다. 이 길고 긴 '돈키호테'(완역본은 1700쪽 분량)를쓰고 있는 세르반테스를 그린 그림은 없는지. 외팔이 세르반테스는 이리저리 나풀거리는 종이를 어떻게 했을까. 오른손으로 종이의 왼쪽 귀퉁이에 문진 같은 것을 얹고, 오른손으로 종이를 채우고, 다시 오른손으로 문진을 치우고, 오른손으로 종이를 넘겼을까. 아니면 감옥에서 사귄 산초 같은 충직한 종자(從者)가 옆에서 종이를 넘겨주는 페이지 터너(page turner)의 역할을 해주었을까. 도레, 호가스, 프라고나르, 도미에, 고야, 피카소, 달리 같은 화가들이 돈키호테를 그렸지만 세르반테스는 그려주지 않았다.

들려오는 풍문으로 짐작했을 때, '돈키호테'는 제일 읽고 싶지 않은 책 중의 하나였다. 근대소설의 '기원' 혹은 '아버지' 같은 엄숙한, '행동'이나 '모험'처럼 구태의연한, '우스꽝스러운'이나 '포복절도할' 같은 말초적인 단어들이 이 책을 휘감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 형이하학보다 형이상학을 숭상하지는 않아도, 나는 행동보다는 사유에, 동사보다는 형용사에, 질박보다는 절박에, 절박보다는 희박에 끌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역시 도스토옙스키에게도 그리 끌리지는 않지만, 그의 이런 말은 옳다. "천재에 의해 창조된 모든 책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우울한 책." 돈키호테는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사람이고, 그래서 가장 많이 앓는 사람이며, 가장 창백하고 연약하고 처연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말을 바람에 실을 것일까. 알론소 키하노로 태어나 돈키호테로 살다가 알론소 키하노로 죽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팔뚝의 힘과 용기를 믿었으며 "세상에 없는 세 발 달린 고양이"를 찾으려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겠다. 풍차를 거인으로 오인하고 양떼를 군대로 착각한 사람, 사자와의 싸움에서는 이겼지만 고양이에게는 패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겠다. 방랑 기사였으나 끝내 작위나 영지를 얻지 못한, 쓸쓸하나 위대한 시골 양반(鄕士)의 이야기라고 하겠다. "덕이 핏줄을 격상시킨 경우"라는 작가의 말처럼, 고귀하게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고귀하게 기억되고 있는 고귀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겠다. 대부분 고결하게 태어나지 않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살다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좋은 소설에는, 쓸데 있는 것은 없고 쓸데 없는 것이 있다. 애초에 소설이란 태생 자체가 쓸데 없는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 쓸데 없는 것을 요설(饒舌)이라고도 하지만, 이 쓸데 없는 덤불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게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 "난 미친 사람이고, 또 미친 사람이어야 해"라는 돈키호테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것은, 이 무정한 기사 양반에게 속는 것일 수 있다. 완벽한 거짓말이라는 게 있다면, 거짓말하는 자신까지 속여야 한다. 돈키호테는 완벽하지 못했다. 그리고 묻고 싶다. 어느 정도 미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했다. 제정신이란 기분 좋은 거짓말이라고.

어쩌면 돈키호테는 불멸의 업적에는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불멸의 생을 살고 싶었을 뿐. 한니발은 카르타고를,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를 얻었고, 돈키호테는 산초를, 그리고 나의 마음을 얻었다. 아직까지 얻어온 마음보다 더 많은 마음을 얻을 것이다. 마음으로 얻은 명성은 쇠락할 일이 없다는 것을 간파한 17세기 사람 세르반테스의 무덤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멋진 일이 아닌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확실한 것보다 불확실한 것의 편인 사람이었으니까. 환상이라는 자신만의 성(城)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한 현자였으니까. 헛것들을, 미명을, 사랑을 추구한 허영의 이해자였으니까. 이런 허영심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140자 트윗독후감

"저, 주인님. 저기 보이는 것은 거인이 아니라 풍차인데요."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봤습니다. 이상주의자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자  산초의 대립. 어처구니없는 것들에 도전하고 패배하지만 결코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았습니다.(페이스북 응모자 한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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