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 늘고 船價 하락… 조선업, 내년엔 살아날듯

조선업계가 올해 최악의 한 해를 넘기고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분위기가 반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조선업계는 이달 들어 친(親)환경 선박을 무더기로 수주하며 불황에서 탈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폐선(廢船) 물량 최대

영국 조선·해운 분석 기관인 클락슨(Clarkson)은 올 들어 지난달까지 해체된 노후 선박 물량이 5440만DWT(재화중량톤수·화물을 실을 수 있는 무게)로 집계됐다고 23일 밝혔다. 폐선(廢船) 물량이 5000만DWT를 돌파한 것은 처음이다. 올해 전체로는 6000만DWT에 육박할 전망이다. 조선 경기가 한창 좋던 2008년(1420만DWT)에 비해선 4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폐선량이 급증한 것은 선박이 과잉 공급됐기 때문. 연료비가 오르는 반면 교역량이 줄어 운임은 떨어지는 추세다. 일감이 없어 배를 놀릴 바에야 차라리 고철로 파는 길을 택하는 해운회사가 늘고 있다.

환경 규제 강화도 폐선 증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내년부터 2025년까지 국제 항해 선박에 대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지금보다 30% 줄이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지키지 못하는 선박은 운항이 규제된다.

박무현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지난 10년 동안 국제 유가는 5배가량 올라 선박의 연료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면서 "고유가와 환경 규제로 노후 선박의 폐선 추세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선박 신규 발주량은 급감한 상태다. 클락슨은 지난달까지 세계 선박 발주량이 999척(3990만DWT)에 그쳤다고 밝혔다. 1년 전에 비해 선박 척수 기준으로는 38%, DWT 기준으로는 47.4% 줄어든 것이다. 선박 발주량이 1000척을 밑돈 것은 1999년 이후 처음이다. 전 세계에서 일감이 전혀 없어 놀고 있는 조선소가 700개를 돌파했다고 클락슨은 분석했다.

◇내년 하반기 회복 기대

조선 경기가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지만 내년 하반기에는 회복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폐선으로 운항 상선(商船)이 줄었고 선박 건조 가격이 내리는 추세여서 내년부터 상선 신규 발주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올 4분기 들어 화학제품을 운반하는 중형 탱커 재매각(resale) 가격이 신규 계약 가격을 웃도는 것도 바닥 탈출의 긍정적 신호로 여겨지고 있다. 친환경 설비를 갖춘 탱커를 중심으로 신규 건조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매각이란 계약 해지로 건조 중인 선박이 다른 선주에게 팔리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국내 조선업계는 이달 들어 친환경 선박 수주에 잇따라 성공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브루나이 국영가스회사에서 15만5000㎥급 LNG(액화천연가스) 1척을 수주했다고 23일 밝혔다. 현대삼호중공업도 이날 그리스 마란가스로부터 17만4000㎥급 LNG선 4척을 수주했다.

STX조선해양은 세계 3대 석유회사인 영국 BP와 16만DWT급 탱커 등 탱커 13척을 7500억원에 수주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SPP조선은 이달 초 유럽 선사(船社)로부터 한꺼번에 중형 석유화학제품선 14척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신규 수주 물량의 대부분이 기존 선박보다 연료 효율이 높은 친환경 선박인 것이 특징이다. 대우조선해양 고위 관계자는 "친환경 선박은 기존 선박에 비해 연료 효율이 20% 좋다"면서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친환경 선박을 중심으로 신규 상선 발주 시장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폐선(廢船)

더 이상 배 역할을 못하게 된 선박을 해체하고 쓸 만한 부품을 재활용하는 작업. 철근 원료인 고철 가격이 t당 500달러를 넘어서면서 선박 해체 산업이 유망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