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계로소이다

  • 정지현 시니어조선 편집장
  • PHOTOGRAPHER·김덕창(studio Da:)

입력 : 2012.12.26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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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에게 시계란 그저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여자들이 디자이너 슈즈에 열광하듯 남자들의 궁극적 아이템은 시계라 할 수 있다. 스타일링의 화룡점정으로서만이 아니라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해주는 것.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는 그 사람에 대해 말해준다’는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말처럼 굳이 직업과 신분을 말하지 않아도 손목 시계만으로 상대방의 배경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지름 40mm 내외에 불과한 작은 오브제지만, 시계는 과학이 담긴 하나의 예술품이라 해도 무방하다. 명품 시계를 만드는 워치메이커들은 시계의 심장이라 불리는 무브먼트를 비롯해 혀를 내두를 만한 기술력과 세공 기술, 예술가의 작품 못지않은 미감이 담긴 디자인 등으로 감탄과 감동을 자아낸다. 한 번 보고 나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시계 앓이를 하게 할지도 모를 베스트 브랜드 아이템을 소개한다.


위블로 에어로 뱅 골드

고무 소재의 선두 격인 위블로는 처음으로 천연 고무 스트랩을 제작, 시계에 적용했다. 고급 시계와 고무 스트랩, 이 둘의 조화가 쉽게 연상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고무 소재의 가볍고 견고한 기능성과 특유의 미감이 어우러진 위블로 시계는 색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착용 가능하고, 멋스러우면서도 유행을 타지 않는 미니멀리즘한 시계를 만들겠다”는 설립자 카를로 크로코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는 것. 1980년 선보인 위블로는 100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명품 시계 브랜드와 비교하면 역사가 짧은 편이다. 그러나 ‘고급 스포츠 시계’의 대표 주자로 요트, 승마, 폴로 등 럭셔리 스포츠를 즐기는 로열 패밀리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로 꼽힌다.

스타일리시한 케이스에 무브먼트가 훤히 보이는 스켈레톤 다이얼의 에어로 뱅 골드는 18K 레드 골드 소재의 베젤 위에 위블로 고유의 H모양 나사, 스틸 및 캐블러로 이루어진 케이스가 어우러진 제품. 3시 방향의 30분계 크로노그래프, 6시 방향의 12시간계 크로노그래프 , 9시 방향의 영구 초침 크로노그래프가 장착되어 있다. 지름 44㎜, 셀프 와인딩 스켈레톤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42시간 파워리저브.


바쉐론 콘스탄틴 말테 스몰 세컨즈

1755년 등장한 바쉐론 콘스탄틴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시계 브랜드. 오랜 역사와 더불어 최정상급 시계 기술과 철저한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무브먼트 부품을 연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팬토그래프를 최초로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야금술, 금속 제조, 깎는 기술 등을 통해 시계 기술의 진보에 앞장서왔고, 숙련된 장인들이 100% 수작업으로 제조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를 살펴보면 상징적인 십자가 형태가 눈에 띄는데, 이는 1880년 상표 등록한 말테 크로스(Malte Cross). 원래 배럴을 덮는 덮개였으나 지금은 다이얼의 패턴, 스트랩, 버클 등 곳곳에서 말테 크로스를 볼 수 있다. 토노 형태의 말테 스몰 세컨즈는 시, 분 그리고 스몰 세컨즈만 보여주는 절제된 디자인이 돋보이는 모델이다. 12시 방향과 6시 방향의 시 표시점만 로마 숫자로 표기하고, 갈색 악어 가죽 스트랩과 말테 크로스 핑크 골드 버클이 어우러져 전통적인 시계의 분위기와 심플한 세련미가 느껴진다. 크기 36.7 x 47.6㎜, 바쉐론 콘스탄틴 4400AS 무브먼트.


피아제 구버너 크로노그래프

1957년 두께 2㎜의 세계에서 가장 얇은 핸드 와인딩 무브먼트 9P, 1960년 두께 2.3㎜의 세계에서 가장 얇은 셀프 와인딩 무브먼트 12P를 내놓은 피아제. 1874년 스위스 라코토페의 작은 공방에서 시작된 피아제는 시계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무브먼트를 제작하는 곳이었던 만큼 울트라 신 무브먼트의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후 무브먼트뿐 아니라 시계 제작에도 참여한 피아제는 1957년 남성 시계 ‘엠퍼라도’를 비롯해 오닉스, 오팔, 코럴과 같은 스톤을 다이얼(문자판)로 활용한 주얼리 시계 등을 선보였다.

남성들을 위한 블랙 타이 컬렉션 라인으로 출시된 구버너는 건축적 구조미와 기술력이 돋보이는 제품. 원형 케이스, 타원형 다이얼 개방부 그리고 다이얼 가운데 자리한 원형 등 반복적인 원형과 타원형이 조화를 이룬 케이스 디자인은 정교하고 균형 잡힌 건축적 구조를 만들어낸다. 구버너 크로노그래프에 장착된 피아제 자체 제작 무브먼트는 초침, 시, 분과 더불어 세컨드 타임 존 디스플레이, 6시 방향의 날짜 표시 기능을 작동시킨다. 지름 43㎜, 882P 초박형 기계식 셀프 와인딩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50시간 파워리저브.

TIP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flyback chronograph)는 크로노그래프 초침을 움직인 다음 리셋 버튼을 누르면 초침이 12시 제로 방향으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움직이는 기능. 일정한 시간을 연속해서 측정할 때 유용하다.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엑스트라 플랫

1847년 루이 프랑수아 카르티에에 의해 탄생한 까르띠에는 세계적인 주얼리·시계 브랜드. 애초에 보석 세공업으로 출발했지만 오래지 않아 시계를 제조하기 시작해 까르띠에만의 보석 세공술과 디자인 기술을 활용해 주얼리만큼이나 아름답고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였다. 이후에도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 ‘산토스’를 비롯해 군용 탱크에서 영감을 받은 ‘탱크’, 유니섹스 모델 ‘발롱 블루‘, 남성용 시계인 ‘칼리브 드 까르띠에’ 등 새로운 시계 라인을 끊임없이 더해오고 있다.

손목을 감싸 안는 형태로 많은 고객들에게 사랑을 받은 발롱 블루 컬렉션은 라지 사이즈를 제외한 대부분이 여성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엑스트라 플랫은 남자를 위한 시계를 표방한다. 46㎜ 크기의 케이스, 카보숑 커트 사파이어로 장식한 크라운을 아치형 메탈로 보호하는 형태의 디자인 등으로 남성미를 강조한 것. 여기에 까르띠에 워크숍에서 자체 제작한 2.1㎜의 발롱 블루 엑스트라-플랫 무브먼트를 탑재해 케이스 두께가 반으로 줄어들 만큼 얇아진 점도 매력적이다.


예거 르쿨트르 듀오미터 퀀템 루너

예거 르쿨트르는 시계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을 100% 자체 생산하는 몇 안 되는 브랜드 중 하나다. 1833년 앙트완 르쿨트르가 무브먼트를 만드는 작은 공방을 설립하면서 역사가 시작된 만큼, 현재까지 제작한 무브먼트가 1200여 종을 넘는다. 2007년 선보인 듀얼 윙 무브먼트는 하나의 태엽통에서 독립된 2개의 배럴에 동력을 각각 저장하는 콘셉트의 획기적인 아이템. 1개의 동력은 이스케이프먼트와 밸런스 휠에 동력을 공급하고, 또 다른 배럴은 시간을 나타내는 기능, 즉 시침·분침·초침 그리고 남반구와 북반구 달의 모양과 문 에이지를 표현하는 기능에 동력을 공급하기 때문에 오차가 거의 없다.

문 페이즈 기능과 오픈워크 디자인의 다이얼을 더한 듀오미터 퀀템 루너는 듀얼 윙 콘셉트로 두 개의 독립된 동력을 저장하여 시간의 정확성을 높였으며, 세계 최초로 크로노그래프가 아닌 시간을 1/6초 단위까지 나타낸다. 다이얼을 정중앙으로 나누었을 때 왼쪽은 문 페이즈(Moon Phase)와 문 에이지, 날짜를 나타내며 오른쪽은 시간을 표시한다. 지름 42㎜, JLC 인하우스에서 만든 칼리버 381, 50시간 파워리저브


IWC 포르투기즈 퍼페추얼 캘린더

실용적인 기능과 간결한 디자인. 많은 이들이 IWC를 선호하는 까닭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1885년 디지털 방식으로 시와 분을 보여주는 최초의 회중시계를 소개했고, 이후 1936년 파일럿, 1939년 포르투기즈, 1940년 빅 파일럿 등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특유의 컬렉션을 차례로 선보였다. IWC의 퍼페추얼 기술은 최초의 4자리 연도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창과 2499년까지 윤년을 포함해 정확하게 세팅된 퍼페추얼 캘린더(영구 달력), 577년이 지나도 그 차이가 하루를 넘지 않는 문 페이즈 디스플레이 기능으로 찬사를 받은 바 있다.

IWC가 가장 자랑하는 모델인 포르투기즈 퍼페추얼 캘린더의 새로운 버전은 뚜렷한 베젤로 더욱 시선을 사로잡으며, 로즈 골드 버전은 5N 수준의 레드 골드 케이스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12시 방향에 위치한 문 페이즈는 남반구와 북반구에서 관측 가능한 두 가지 달의 형상을 담아낸 더블 문 페이즈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퍼페추얼 캘린더 시스템이 결합된 오토매틱 무브먼트, 7일 파워리저브.


브레게 헤리티지 컬렉션

투르비옹의 기원, 워치 메이킹의 살아 있는 역사, 유럽을 뒤흔든 명사들을 매혹시킨 최고의 헌사물. 238년의 역사를 지닌 브레게를 설명하는 또 다른 표현이다. 스위스 뇌샤텔 출신의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최초의 오토매틱 시계(두 개의 태엽과 진자를 가진 셀프 와인딩 퍼페추얼 워치)를 선보이면서 혁신적인 시계 생산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1783년에는 미니트 리피터 시계의 핵심인 차임을 울려주는 ‘공 스프링(Gong Spring)’을 무브먼트 외곽으로 감싸는 형태를 고안하고, 1786년에는 다이얼을 길로셰 문양으로 데커레이팅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유럽 왕실과 상류층에서 선호했는데, 나폴레옹, 마리 앙투아네트, 윈스턴 처칠 등이 대표적이다.

헤리티지 컬렉션은 완벽한 고난이도 기술을 보여주는 토노 형태의 케이스 디자인에서 18세기 말 스타일의 브레게 이미지를 고스란히 표현한 모델이다. 길로셰 패턴이 웨이브 모양으로 멋스럽게 새겨진 다이얼, 6시 방향에 러닝 세컨즈(초침을 알려주는 인덱스와 핸즈)가 자리 잡은 디자인은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한 느낌을 준다. 크기 29.6x35㎜, 셀프 와인딩 무브먼트.

TIP 투르비옹(Tourbillon)은 1801년에 브레게가 최초로 개발한 밸런스 이스케이프먼트 시스템(Balance Escapement System)으로, 지구의 중력과 착용 위치 등 무게중심에 따른 시간의 오차를 줄이는 기술이다.


로저드뷔 엑스칼리버 42 오토매틱

로저드뷔는 1995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워치메이커 로저 드뷔로부터 출발해 불과 17년 만에 최고 수준의 워치메이킹 기술력을 보유한 브랜드로 등극했다. 최고 품질의 기계식 시계를 만들어내는 기술력과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이 균형을 이룬 시계들을 선보였는데, 이를 대표하는 컬렉션으로 엑스칼리버를 꼽을 수 있다. 또한 매뉴팩처 내에서 생산하는 모든 시계에 최고의 장인 정신을 보증하는 제네바 실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기존 45㎜의 엑스칼리버보다 더욱 우아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이는 엑스칼리버 42는 대범한 사이즈의 로마 숫자 인덱스가 시선을 사로잡는 제품. 아더왕의 명검 엑스칼리버를 나타내는 검(劍)형 시침과 분침은 메인 다이얼에서 읽을 수 있고, 초침은 9시 방향의 카운터에 표시된다. 매뉴팩처 로저드뷔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고안해서 제작된 오토매틱 무브먼트 RD620을 탑재하고, 폴딩 버클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부착한 악어가죽 스트랩을 장착해 완성했다. 지름 42㎜, 52시간 파워리저브.


소품 협조 까르띠에(1566-7277), 로저드뷔(02-3438-6195), 바쉐론 콘스탄틴(02-3449-5930), 브레게(02-6905-3571), 예거 르쿨트르(02-756-0300), 위블로(02-540-1356), 피아제(02-540-2297), IWC(02-2639-1950)

참고 도서 <내 남자를 튜닝하라>(황금부엉이), <시계이야기>(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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