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무소유'도 지금 나오면 자기계발서?

올 연말 서점에 놓인 자기계발서 신간 매대(賣臺)는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한눈에 자기계발서인 것을 알아볼 '40대 다시 한 번 공부에 미쳐라'(김병완)와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 가득한 육성을 차동엽 신부가 글로 엮은 '친전'이 같은 탁자에 놓여 있다.

이부연 위즈덤하우스 분사장은 "그 책이 어떤 구조로 쓰였든 간에 말하려는 메시지가 개인의 '계발'을 조금이라도 담고 있으면 자기계발 표지를 달아 시장에 내놓는 게 최근 출판의 흐름"이라고 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도 출간 당시(1976년)엔 수필집(에세이)으로 분류했지만 지금 다시 출간한다면 집착과 소유에 대해 쓴 지적 통찰의 글을 자기계발로 분류해 팔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의 추락과 재도약

10여년 전만 해도 출판계에서 '자기계발'은 없던 분야였다. IMF 이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 '익숙한 것과의 결별'(구본형)이 명예퇴직을 요구하는 세태와 맞물리면서 시장에 불이 붙었다. 특히 2005~2008년은 자기계발서의 최대 호황기였다.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탄줘잉)와 '마시멜로 이야기'(호아킴 데 포사다) '시크릿'(론다 번)이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4년 연속 꿰찼다. 2008년 교보문고의 자기계발서 상위 20위 판매량은 40만7100권을 기록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뛰라고 채근하는 자기계발서에 독자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책이 시키는 대로 경쟁했는데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2009년 '엄마를 부탁해'(신경숙)가 소설로서는 5년 만에 1위를 탈환한 그 해, 자기계발서의 상위 20위 판매량은 전년의 절반(23만5613권) 가까이 뚝 떨어졌다.

◇인문 고전도 자기계발로 변신

김성수 북21 기획실장은 "그때부터 자기계발서는 돌고 도는 주제, 뻔한 콘셉트에서 탈피해 타 분야의 책까지 자기계발로 끌어들이며 문어발 확장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인문·경영·심리분석·철학·에세이로 분류했을 신간을 처음부터 자기계발서로 내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세기 영국 저널리스트 새무얼 스마일즈가 쓴 '자조론(원제 Self―Help·1859년 출간)'은 1980년대 삼성출판사 고전(古典) 시리즈 중 하나로 번역된 인문서였으나 최근 재출간되면서 자기계발로 재분류됐다.

최인철 서울대 교수(심리학과)의 '프레임'은 심리학 책이지만 부제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를 달고 자기계발서로 팔리고 있으며, 내성적인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이 조직에서 중대한 성과를 낸다고 주장하는 '콰이어트'(수전 케인)도 인문서가 아닌 자기계발 시장을 겨냥했다. 10년 전이라면 에세이로 갈렸을 '남자의 물건'(김정운)과 '생각 버리기 연습'(코이케 류노스케), 경영서로 분류됐을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스튜어트 다이아몬드)가 이젠 자기계발의 외피를 두른다는 것이다. 어려운 경제 상황, '힐링'으로 위로를 받으면서도 자기계발을 통해 도약을 꿈꾸는 독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자기계발서의 변신 어디까지

인문고전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자기계발서의 '식욕'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한 출판인은 "개인의 물질적 성공만 추구하던 자기계발서가 심리·명상·인문적 차원으로 시야를 넓히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얼핏 보면 책의 질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진짜 높아진 건가, 자기계발서가 끌어온 고전은 책 속에서 100% 그 품질을 유지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출판 평론가 한미화씨는 "뇌과학과 경영조직론, 멘토와 코칭에 관한 심리학 등으로 폭넓게 발전시킨 미국식 자기계발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일본식 자기계발서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자기계발서는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며 "특히 내년에는 뇌과학과 철학 콘텐츠를 자기계발서로 대중화하는 작업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