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재계·산업계 지형변화] [上] M&A 큰손 된 롯데… 웅진 '자수성가 신화'는 깨져

올 한 해 재계를 관통한 단어는 '불황'이었다. 참고로 올 1월 본지에 '불황' 단어가 들어간 기사는 46개였다. 하반기 들어서 급증하더니, 11월에는 125개에 달했다. 갈수록 수출·내수 기업 가릴 것 없이 전방위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웅진 윤석금 회장처럼 그룹 해체를 지켜봐야 하는 비운의 경영인이 나왔다. 반면 공격적인 경영을 벌여 성과를 낸 기업인도 등장했다.

◇불황을 거부한 역발상 기업인

인수합병(M&A) 실적 면에서 보면 신동빈 롯데 회장이 단연 톱으로 손꼽힌다. 올해 M&A 최대 계약 중 하나로 꼽힌 하이마트 인수(인수가액 1조2480억원)를 비롯, 그랜드백화점 영통점과 인천 계양점을 1540억원에 사들이는 등 'M&A계의 큰손'으로 군림했다.

또 경쟁사인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이 입점해 있는 인천터미널 땅, 건물을 사들이는 데만 8751억원을 투입했다. 계약대로라면 2017년 이후 현 신세계 자리에 롯데백화점이 들어선다. 이 백화점은 지난해 매출 7600억원으로 업계 7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최근엔 포스코가 시장에 내놓은 베트남 다이아몬드 플라자·창원 대우백화점·부산 센트럴스퀘어 등을 일괄매수하는 협상을 단독으로 진행 중이다.

라이벌 기업 신세계가 10월 서울강남점이 입점한 센트럴시티의 지분 60%를 인수하고, 연말 대규모 인사를 벌인 것도 롯데 공격에 대한 재반격 진용을 갖추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실적으로 보면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재용 부회장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도 재계를 선도한 인물이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5조2960억원의 영업이익을 시작으로 올 3분기에는 8조1250억원을 버는 등 기록을 경신해오고 있다. 애플과 특허싸움이란 고비가 있었지만 이 싸움을 전 세계에서 삼성제품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이달 초 사장단인사에서 이재용 당시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재계 후발주자의 부진

올해는 재계 후발주자 그룹들의 부진이 심했다. '세일즈맨 성공신화'인 윤석금 웅진 회장의 시련이 대표적이다.

윤 회장은 9월 어음을 막지 못해 그룹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와 주력 계열사 극동건설까지 함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전 세계에 불어닥친 건설경기와 태양광경기 악화를 견디지 못했다. 그는 백과사전 외판원으로 시작해 연매출 6조원, 재계 31위 대기업군을 일궈냈을 정도로 요즘 재계에서 보기 드문 자수성가(自手成家)형 기업인이었다.

현재 채권단은 코웨이를 매각키로 한 데 이어 웅진케미칼, 웅진폴리실리콘 등에 대한 새 주인 찾기 작업을 벌이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계열사들은 뿔뿔이 다 흩어지고 새 주인을 찾지 못한 몇 개 기업만 그룹에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또 다른 샐러리맨 신화인 STX 강덕수 회장도 올 한 해 시련을 겪었다. 그는 그룹의 돈줄이었던 STX팬오션 매각에 나섰다. 그룹 전체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지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한 조치다. 조선·해운을 양대(兩大) 축으로 운영해 왔던 사업 구조도 불가피하게 조선 중심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이달 들어 STX그룹은 이탈리아 조선업체 핀칸티에리에 STX OSV를 매각하며 일부 배당금 등을 더해 총 7680억원을 받는다. 또 STX에너지 지분 43.1% 매각으로 3600억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재판정에 서는 기업인들도 많았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1400억원대의 회사돈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태원 SK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은 역시 회사 돈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1심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배임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