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학생 34명 수학여행 3년째 보내준 '산타' 회장

"수학여행 보내주신 분…기억 났다!"

지난 20일 오후 경북 안동 영명학교 도촌분교. 2층 바오반 교실에 들어선 이재업(58) 안동상공회의소 회장을 보고 서정규(43·지적장애 1급) 학생이 이렇게 외쳤다. 여홍리(54) 교사가 "서정규씨 수학여행 어디 갔다 왔죠?"라고 물었다. 서씨는 "자연농원, 하우스텐보스, 아소활화산"이라 답했다. 이 회장은 서씨 등 4명에게 손수 파카를 입혀주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여씨가 "회장님께 감사하다고 인사해야지"라고 말하자 학생들은 어눌한 발음으로 "간사합니다" "괌사합니다"라며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이 회장이 이날 이 학교 학생 34명 모두에게 파카를 한 벌씩 기부했다. 도촌분교장 배연일(58) 시인은 이 회장에 대해 "3년째 이 학교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후원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산타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 했다.

특수학교인 도촌분교는 정식교육을 받지 못한 중·장년층 지적 장애인들이 초·중·고 과정을 공부하는 곳이다. 부모가 없고 기초생활수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보니 그동안 수학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1992년 개교 이래 2009년까지 18년간 수학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배씨는 4년 전 수학여행을 도와줄 후원자를 찾아 1년간 120여개의 기업체를 찾아갔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회사 사정상 도와줄 수 없어 미안하다'고 연락해온 기업 1곳을 제외하면 모두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던 2010년 1월. 배씨는 자신이 외래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에 강의를 들으러 온 중학교 동창 이 회장을 40여년 만에 만났다. 몇 주 뒤 이 회장의 회사를 찾아가 둘러본 배씨는 '이런 시골 중소기업에서 무슨 후원을 하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배씨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그간 고생했던 얘기를 털어놓았다. 얘기를 듣던 이 회장은 "당장 도와주겠다"며 바로 다음 주에 2400만원을 후원했다. 이 돈으로 도촌분교 학생들은 여름에 2박3일간 일본의 하우스텐보스와 아소활화산으로 수학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이 회장의 계속된 후원으로 작년 여름에는 용인 에버랜드와 남이섬으로, 올 5월에는 대구 이월드와 경주 문화유적지로 수학여행을 갔다. 지금까지 후원한 돈은 3200만원에 달한다.

수학여행은 이들에게 특별한 추억이 됐다. 곽기남(53·지적장애 1급) 학생은 "선생님 우리 작년에…좋았죠? 에버랜드 갔다 왔죠?"라며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윤형규(44) 교사는 "우리 학교 학생 중 말을 좀 할 줄 아는 대여섯 명은 이렇게 매일 여행 이야기를 꺼낸다"며 "말을 못하는 학생들도 벽에 걸린 수학여행 사진을 보며 배시시 웃는다"고 했다.

이 회장은 "나와 비슷한 연배인데도 정신연령이 3~4세에 불과한 이곳 학생들을 보고 처음엔 깜짝 놀랐다"며 "이런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들과 시간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내가 후원한 돈은 전혀 큰돈이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