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2.27 10:02

제3의 인생을 준비하는 경남 함양 박석제 씨(39)

IT 분야의 고된 업무로 고혈압, 당뇨, 고지열, 심혈관질환까지 4관왕이란 불명예를 안게 된 박석제 씨. 어린 시절부터 농촌생활을 꿈꾸며 함양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지 어느덧 5년의 세월이 흘렀다. 현재 건강을 되찾은 것은 물론이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곶감에 이어 고추와 양파, 소까지 키우며 또 다른 삶을 계획 중인 그를 찾아가보았다.

4대 성인병을 안고 귀농을 결심하다

“IT 업무의 특성상 야근이 많다 보니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을 죄다 휩쓸었죠. 건강이 악화하자,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귀농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아내의 반대가 심했죠. 하지만 제 건강 상태를 고려해 아내도 귀농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책상에 앉아 종일 두뇌싸움을 벌여야 하는 프로그래머의 일상에 대해 일일이 나열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마른 체구의 박석제 씨가 퀭한 두 눈으로 출·퇴근을 반복했던 일상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4대 성인병을 안게 된 것은 한편으론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더욱이 어려서부터 농촌생활에 대한 향수가 있던 그는, 건강이 악화하는 것을 실감하자 젊은 나이였음에도 귀농을 결심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도시생활에 젖어있던 박 씨와 마찬가지로 도시의 삶에 익숙해 있던 아내의 반대는 당연했다. 양쪽 부모님의 반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학교 졸업 후 어엿한 직장에 취직해 안정된 삶을 꾸려가던 젊은 부부’의 갑작스러운 농촌생활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아내와 가족들은 박 씨의 건강문제와 함께 귀농에 대한 남다른 의지를 보고는 결국 허락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때만 해도 허락은 하되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터. 이에 박 씨는 보란 듯이 땅을 사고 농사를 지으며 귀농 5년 만인 현재 경제적인 안정과 더불어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기에 이르렀다.

“동경은 했지만, 현실로 부딪치니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농촌 삶이라는 게 도시와는 달라 몸도 마음도 힘들었죠. 처음엔 아내와의 갈등도 많았어요. 경제적인 문제부터 의료, 교육시설이나 문화시설도 도시와는 달랐으니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죠.”

2008년 함양 수동면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지만, 당시 아내가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기에 어려움은 더욱 컸다. 인근에 초등학교가 폐교 위험에 처한 탓에 첫째 아이의 학교 문제 또한 큰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그는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자연 속에서 즐거움을 찾게 된 아이들과 가족 간의 많은 대화가 오가는 지금의 삶이 행복, 그 이상의 유쾌한 일과이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들과 아내는 서울생활이 싫다고 말할 정도로 농촌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물론 박 씨의 건강은 그의 말을 빌려 ‘대박 건강’한 육체를 갖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그에겐 농촌생활이 전해준 선물이라고 한다.

관행농업과 친환경농업을 병행하다

“이제는 안정을 찾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농사에 대해 일자무식이었기에 여기저기 교육 프로그램에도 많이 참석했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분야의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1년 기준으로 연 매출 1억 2천만 원을 기록한 그의 귀농 성공전략은 학습과 도전에 있었다. 끊임없이 공부하며 배워나가는 것, 그리고 새로운 것을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실제 그는 천안 연암대에서 진행하는 교육과정과 창업농 후계자 교육을 비롯해 친환경 관련 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이수했다. 뿐만 아니라 귀농에 앞서 8년간의 직장생활을 마감함과 동시에 가족은 서울에 두고, 6개월 정도 먼저 내려와 농사를 배우기도 했다.

많은 귀농인이 큰 꿈을 그리고 농촌생활에 들어서지만, 1~2년을 견디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박 씨는 바로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꾸준한 준비와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농사는 흘린 땀방울만큼 결과를 준다’는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전에 어떤 작물에, 어떻게 농사를 지어 땀방울을 흘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 나아가 귀농 후에도 꾸준한 학습이 바탕이 되어야 행복한 농촌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덧붙여, 자금운용 능력 또한 귀농에서 매우 중요한 키워드라고 강조한다. 개인투자 가능 비용이나 정책지원금 등 자신이 운용할 수 있는 비용을 철저하게 분석한 뒤에 귀농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농업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귀농인이 상품 경쟁력 확보를 위해 친환경농업을 계획합니다. 그리곤 처음부터 유기농을 시작하죠. 이들 중 몇명이나 성공적인 농촌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귀농 선배로서 조언을 하나 건네면, 관행농업과 자연농업을 병행하면 실패할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자연농업을 통한 작물이 인기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비닐하우스나 비료 등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 자연의 힘으로 길러 맛과 영양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손이 많이 가고 관행농업에 비해 양이 적은 게 사실이다. 즉, 어렵기 때문에 경쟁력이 우수할 수밖에 없다. 결과만을 놓고 보면 자연농법은 경쟁력을 갖춘 농업이지만 농사에 무지한 귀농인이 시도하기엔 실패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위험을 줄이는 것이 바로 귀농의 성공키워드라고 박 씨는 귀띔한다.

농촌생활이란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것

박 씨는 또 하나의 귀농 성공키워드로 ‘함께’라는 단어를 들려준다.

“귀농은 혼자가 아닌 가족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준비부터 계획, 진행, 삶까지 남편과 아내, 아이들이 모두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등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큰 귀농의 어려움이니까요. 또한 가족만이 아닌 마을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도시생활과 달리 농촌생활은 모든 것이 마을 단위로 진행되기 때문에 사소한 것 하나라도 ‘함께’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처음 귀농을 선택한 이후 가족, 특히 부부의 갈등은 심할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의 삶에 길든 사람들이, 농촌이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삶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는 기관 및 협회를 통해 다양한 지원과 도움이 이뤄지지만, 그렇더라도 몸으로 부딪치는 현실에서의 갈등은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밖에는 도리가 없다. 바로 이런 점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할 수 있는 ‘꺼리’가 있는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좋고, 귀농 후에도 향후 계획이나 실행에 앞서 가족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박 씨가 부모님의 고향을 귀농 지역으로 선택한 것은 땅값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모님의 지인들이 있기에 아내와 아이들은 물론이며, 정착함에 있어 심적 위안과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인들이 있는 곳이라도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지역주민과의 융화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함께’라는 단어를 마음에 새기고 살아간다면 행복한 농촌생활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을 것입니다.”

실제 지역주민과 가까워진 계기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농촌은 어딜 가든 노동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박 씨는 작목반의 활동에 꾸준히 참석함은 물론, 마을 모임이나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젊은이의 활기를 보여주며 주민과의 융화를 이뤄냈다. 그러한 노력은 현재 작목반 총무, 마을 청년회 총무, 새마을지도자 등 왕성한 활동으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마을주민과 ‘함께’하는 농촌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박 씨는 향후 소 100두, 곶감 50동(현재 15동)을 목표로 농촌생활에 전념하고 있다. 나아가 7년 후 농촌생활에서의 목표를 이룬 뒤에는 온 가족이 함께 세계 여행(성지순례)을 계획하고 있다. 물론 삶의 거점은 함양에 두되, 아이들에겐 살아 있는 교육을 실천하고 가족의 종교적인 신념을 지키려는 목적이다.

함양에서 만나본 박석제 씨와 그의 가족은 귀농을 통해 건강하고 유쾌한 삶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의 삶처럼 귀농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고 유쾌한 하루하루를, 나아가 제3의 인생을 설렌 마음으로 계획하며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자료제공·농림수산식품부,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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