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생산 1위' 영천 와인에 인생 건 20명… 세계적 소믈리에 시험 WSET에 도전

경북 영천시 고경면 고도리에 사는 최봉학(52)씨. 1만4850㎡ 면적에 거봉과 머루포도(MBA)를 재배하는 농부이자, 거기서 나온 포도로 와인을 생산하는 와인 제조자이기도 하다. 수확된 포도의 절반이 와인용으로 이용된다. 5년 전부터 마을 이름을 따 '고도리'라는 브랜드로 출시되는 이 와인은 작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최씨는 28일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세계적 권위와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영국 와인전문교육기관인 WSET의 와인자격인증서 취득에 나선 것.

"3년 전 영천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주관하는 와인 교육을 받아 한국소믈리에협회로부터 소믈리에(요리와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자격증을 땄어요. 영천와인의 품질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전문적 와인 지식이 필요할 것 같아 공부를 계속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최씨처럼 영천와인에 인생을 걸었거나 영천와인의 매력에 빠진 영천사람들이 WSET 와인자격인증서 취득에 나섰다. 28일 WSET의 담당자들이 영천시농업기술센터에 직접 와 주관하는 시험은 고급 과정인 '레벨3'. 이 시험에는 모두 20명이 응시한다. 2년 전부터 '영천와인사랑동호회'를 만들어 교류해온 사람들이다. 이 중 최씨처럼 와인을 생산하거나 생산을 준비 중인 사람도 5명이나 된다. 나머지는 와인을 사랑하는 사업가, 교수, 검도인 등이다.

WSET가 영천에서 이번 시험을 주관하는 것은 이곳의 와인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포도 생산량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천시는 2008년부터 지역을 와인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와이너리(와인 제조 공장) 조성과 와인 투어 운영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덕분에 영천에는 공장형 와이너리 3곳 등 모두 17개의 와이너리가 조성돼 있다.

이번에 시험을 치는 김주영(55)씨는 영천와인 개척자 중 한 사람이다. 포도 생산 농민 50여명과 함께 와인을 생산하는 영농조합법인 '까브 스토리'의 대표를 맡고 있다. 김씨는 "와인을 공부하다 보니 전 세계 와인 소비 문화를 알아야 제대로 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번 시험 준비에 나섰다"고 했다.

최경하(67·영천시 북안면 고지리)씨는 피혁 가공업체를 경영하다 7년 전 은퇴한 뒤 영천에 자리 잡았다. 우연한 기회에 와인 공부를 시작했고, 올해는 아예 시골집에 작은 와이너리를 지었다. 최씨는 "영천 토양과 환경에 맞는 포도를 재배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앞으로 이 분야에 초점을 맞춰 와인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건축 관련 사업을 하다 2009년 영천에 귀농한 김용철(52·영천시 신령면 화남리)씨도 영천와인에 빠져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와인 생산에 나선다. 소믈리에 자격증도 이미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