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키워드는 '꿰매기'와 '밥'

또 한 해가 저문다. 가는 해는 무엇으로 기억되고 오는 해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우리 사회 문화·예술계 인사 101명에게 물어봤다. /문화부·대중문화부

[2012년 키워드]

◇멘붕과 환멸

대선의 보수·진보 격돌을 비롯한 사회 '갈등'(김혜숙 이화여대 교수 등 3명)의 앙금은 짙었다. '불안불통(不安不通)'(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 '사회분열'(정종섭 서울대 교수)로 인한 '파찰음'(진성민 다른세상 대표)이 요란했다. 많은 이가 '혼란'(이순인 국제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장 등 3명) '혼돈'(임영웅 산울림 대표 등 4명) '혼탁'(이우환 화가 등 2명)을 떠올렸다. '정신적 공황 상태'를 뜻하는 유행어인 '멘붕'을 시대어로 꼽는 이도 많았다(임혜선 KBS 교양국 PD 등 3명). '좌불안석'(서지문 고려대 교수)에 '환멸'을 꼽았다(김수영 로도스출판사 대표).

계속된 '불확실성'(표정훈 출판평론가)은 '모호'(사진가 김아타)와 '오리무중'(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 등 2명)으로 다가왔고, 저마다 '암중모색'(주경철 서울대 교수 등 2명)을 궁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판타지의 쇠락'을 제시한 구본근 SBS드라마센터장은 "삶이 어려워 도피하려다 다시 현실에 기반하게 된 한 해였다"고 짚었다. 지난 1년은 '롤러코스터'(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였고, 우리 사회는 '레 미제라블(불행한 사람들)'(박맹호 민음사 회장)이었다는 의견.

◇갈려서 평행으로 갔다

'양극화'(문학평론가 유종호)는 '분노'(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를, 그리고 '전쟁'(채윤희 올댓 시네마 대표)까지 떠올리게 했다. 둘로 '분할'(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된 사회는 '평행선'(박윤우 부키 대표)을 달렸다. 갈등의 원인을 '반칙'에서 찾는 견해도 있었다. 영화감독 강우석은 "반칙이 난무하다 보니 '나만 살아남자'는 생각에 사람들이 더 각박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했다"고 봤다. 일상의 고단함은 '힐링'(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등 6명)과 공감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2013년 키워드]

◇기대한다

'새 출발'(김대진 수원시향 지휘자) '새 걸음'(서지문 고려대 교수) '새로움'(김의석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첫걸음'(함춘호 기타리스트) '기대감'(김은조 블루리본서베이 편집장)…. 2013년은 많은 이에게 '희망'(고영은 출판인회의 회장 등 3명)이다. 정진홍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은 "나는 요즘 젊은이들 안에서 커다란 잠재력, 미래에 대한 긍정을 발견한다"며 "내년 키워드는 희망"이라고 단언했다. 정민 한양대 교수는 '비극태래(否極泰來)'란 표현을 썼다. 답답한 상황이 극에 달한 후 순조로운 상황으로 돌아선다는 뜻.

◇찢어졌으니 꿰매라

키워드의 상당수가 새 정부에 대한 주문에 가까웠다. 1순위는 '화합'과 '통합'(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등 10명). 김병일 국학진흥원장은 '해불양수(海不讓水)'라는 사자성어로 대신했다. '바다는 어느 강에서 내려오는 물도 사양하지 않고 다 받아들인다'는 뜻. 이원복 덕성여대 시각디자인학과 명예교수도 "찢어질 대로 찢어졌으니 내년엔 이제 꿰매야죠"라고 했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주합공립(宙合共立)'이란 고어를 인용했다. 정조가 탕평정치를 말하며 규장각 설립할 때 본관을 '주합루'(모든 것을 포용하는 큰집)라 명명한 데서 유래한 단어.

소설가 백영옥은 새해에 대한 기대를 "2012년은 51(박근혜 후보 지지자)이 행복했지만 2013년은 48(문재인 후보 지지자)도 행복할 수 있는 해. 아… 그럴 수만 있다면"이라는 독백투의 단문에 담았다. 주경철 서울대 교수와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나란히 '여권신장(女權伸張)'을 예상했다.

◇카오스

섣부른 기대보다 주의를 환기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갈림길'이라고 답한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새 대통령 선출과 맞물려 어려웠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위안을 받을 것인가 다시 허탈감에 빠질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서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라 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기대 인플레에 따른 '좌절감'을 우려했고, 박시형 쌤앤파커스 대표는 '카오스'를 예감했다. '먹구름'이라 답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세계경제뿐 아니라 힘든 국정 운영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앞다퉈 복지 경쟁만 했으니 걱정"이라고 했다. '허리띠'라 답한 김동식 인하대 교수도 "경제 상황을 생각하면 내년에 허리띠를 풀기는 불가능할 듯"이라 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암중모색'의 해가 될 걸로 봤다. 오세정 기초과학원 원장과 정진석 추기경은 '인내'를 주문했다.

◇공존 혹은 하이브리드

'공존'(김찬 문화재청장)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문화의 '하이브리드' 전망이 이어졌다. 손정완 디자이너와 서수민 KBS 개그콘서트 PD는 "다양한 컬러와 코드가 공존하는 사회"를 예상했다. '파격'을 꼽은 강태규 뮤직팜 이사는 "그간 보지 못했던 혁신적 콘텐츠가 주목받을 것"이라 했고, 가수 최백호는 "문화·사회 전반에 다양한 취향의 코드와 가치관이 충돌하면서 오히려 건강한 에너지가 나올 것"이라 봤다.

오가는 세월 속에서도 불변인 인간 조건에 주목하는 이도 있었다. 소설가 김훈은 "대선을 앞둔 모든 갈등, 그리고 대선이 끝나도 계속될 모든 갈등, 청년실업, 노령화, 비정규직, 정년연장 등 모든 문제가 다 '밥'에서 비롯됐다"며 "올해도 내년도 '밥'"이라고 일갈했다. 사진가 배병우는 "상황이란 예측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든 기다림과 준비의 자세가 필요하다"며 "지난해도, 다가올 해도 '준비'로 기억될 뿐"이라고 했다.

[설문에 참여한 101명]

'2012, 2013 키워드' 설문에는 천주교 정진석 추기경과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등 종교인을 비롯해 101명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다음은 명단.

◇종교=김대선 손인웅 정성진 자승 정진석 혜민
◇문학=김동식 김훈 박성원 박형서 백영옥 유종호 정과리
◇학계=강원택 김근식 김명섭 김병일 김병조 김시덕 김정운 김주환 김호기 김혜숙 민희식 박현모 서지문 설동훈 송호근 오세정 윤종빈 이태진 임지현 정민 정종섭 정진홍 조용헌 주경철 최재천 하우봉 하지현
◇미술·문화재=김병종 김아타 김영나 김종규 김찬 배병우 오광수 이왈종 이우환 이원복 이주헌 천진기
◇연극·뮤지컬·무용=문훈숙 박명성 설도윤 손진책 안호상 임영웅 최불암
◇클래식=김대진 김민 이창주
◇출판·도서관=강성민 고영은 김기중 김성구 김수영 김희순 박맹호 박시형 박윤우 박은주 박종만 백원근 심장섭 진성민 표정훈 한미화
◇대중음악=강태규 신대철 이승철 임혜선 정덕현 최백호 함춘호
◇영화=강우석 김의석 이수남 장경익 채윤희
◇건축·디자인=김인철 손정완 원유홍 이순인 지춘희
◇음식·여행=김아린 김은조 정명효
◇방송=구본근 서수민
◇사회조사=권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