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파워 클래식] 고독과 불면… '겨울 비극'을 읽는다

겨울이면 나는 늘 맥베스를 읽는 버릇이 있다. 맥베스는 내게 늘 2082행의 시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올해는 맥베스와 조금 인연이 더 깊다. 한 달 전부터 나는 대학로 소극장에 연극을 한 편 올렸다. 비행기 기내에서 두 승객의 불안과 망령을 다루는 부조리극이었고 글을 쓴 지 4년 만에 공연된 희곡이다. 영국에서 연출 공부를 하고 온 젊은 친구가 어느 날 서랍 속에 꾸물거리던 내 작품을 공연으로 올려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는 대학로 소극장 공연 실태에 심한 회의를 품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개그로 관객을 웃기거나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은 엉망진창 감정연극…. 그는 그럴 때마다 셰익스피어를 이야기했다.

"영국엔 셰익스피어운동이라는 말이 있죠. 젊은 연극인들 사이에서 셰익스피어는 읽어야 할 고전 덩어리나 진부한 꼰대가 아니라 여전히 왕성한 생명력입니다. 셰익스피어를 재해석하고 분석해가다 보면 극운동이나 극실험의 다양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나는 한참 그의 일장설을 듣다가 대답하곤 했다. "자네도 혹시 셰익스피어 가문인가?" "네? 아…네. 그렇습니다." "난 겨울이면 늘 맥베스를 읽네."

결국 이 셰익스피어운동에 동참하는 배우를 섭외하고, 공연장을 대관하고, 리딩을 하고, 조명을 달고,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고, 끄덕끄덕 적은 제작비로 결국 몇 달의 과정을 거쳐 소극장 문을 열었다. 강추위, 대선 그리고 무엇보다 눈이 푹푹 나리는 날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패다. 하루에 관객이 5명이 안 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한 달 가까이 공연을 올리는 동안 관객이 하나도 없어 극장 문을 못 여는 날도 있었다. 이십여년이 넘도록 연극을 해온 불혹을 넘긴 주인공 배우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이 보게 김 작가. 난 스무 살 젊은 시절 유진오닐의 작품을 할 때 딱 한 번 관객이 하나도 없어서 공연을 못 올린 날이 있었네. 그날 이후 처음이야 허허."

작가인 나로서도 배우들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화가 났지만 무엇에 화를 내야 할지 난감했고, 쓸쓸했지만 무엇 때문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한반도로 돌아온 연출가는 지금 셰익스피어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난 매일 소극장 배우 대기실 난로 옆에서 맥베스를 읽곤 했다. 내가 왜 맥베스에 대해 끌렸는지, 나는 왜 겨울이 되면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 항상 1606년에 집필된 맥베스를 다시 꺼내 읽는지 잘 모른다. 어쩌면 나는 겨울이 아니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있거나 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되던 일들이 공포가 되어가는 기분을 감당해야 할 때 '세계가 운명으로 인해 피의 바다로 변해버리는'비극 '맥베스'를 꺼내는지도 모른다. 맥베스의 희곡을 꺼내 읽을 때마다 나는 첫 페이지의 묘사를 압도적이라고 평가한다. 안개와 암흑 속에서 극이 펼쳐지며 시작하는 대목에는 이 작품이 다루는 주제는 '운명의 예감'이라는 것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이다. 셰익스피어의 극작술이 완숙기에 접어들고 극작가로서 위치가 확실히 보장받을 때 썼던 작품이다. 잘 알려진 '햄릿''오셀로''리어왕'과 함께 '멕베스'는 비극의 마지막 작품으로 읽힌다. 간략한 줄거리를 첨하면 스코틀랜드의 맹장 맥베스는 전쟁에서 개선하여 돌아오는 길에 세 명의 마녀를 만나 자신이 왕위에 오른다는 예언을 듣게 되고 그의 아내는 야심을 품고 덩컨왕을 시해할 계획을 실행한다. 맥베스는 예언대로 왕위에 오르지만 장군의 후손이 왕위에 오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에 뱅코우마저 암살시킨다. 뱅코우의 망령은 맥베스 앞에 끊임없이 나타나게 되고 결국 맥베스는 반항군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적장의 칼에 맞아 죽는다. 살인으로 시작해서 살인으로 막을 내리는 이 비극의 운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을까? 야심의 궤멸, 피를 부르는 운명? 그리스적 비극의 카타르시스? 악의 힘이 지니는 매력? 읽다 보면 다 매력적이고 야멸찬 행간들이다.

하지만 내가 겨울만 되면 맥베스를 꺼내 읽는 이유는 맥베스라는 인물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보여주고자 하는 인간의 고독과 불면에 관한 이야기의 매혹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독과 불면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의 내면에서 태어나 하나의 망령처럼 어느 날 우리 앞에 우뚝 서 있을 것이라는.

140자 트윗독후감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심과 야망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선택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맥베스의 이중적인 모습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합니다. 거대한 운명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인간의 초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트윗 응모자 ygwish)

voideye, Hyhappy7, Kcshin, 페이스북 응모자 Jiyeong Yeom 등 다섯 분께는 개별 통지해 선물을 드립니다. 101명 무료 동영상 강의는 휴넷(http://hunet.co.kr)에서 안내합니다.

- 명사 101명이 추천한 파워클래식 전체보기

- 파워클래식 지난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