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새해 첫날부터 어려운 이웃과 떡국 나눈 스님·신도들

"아이고, 좋지요. 새해 첫날 절에서 따뜻한 떡국도 끓여 주시고, 스님이 이렇게 손도 잡아주시고…."

창밖으로 조금씩 눈발이 흩날렸다. 1일 오전 11시 대구 송현동 주택가 한가운데 자리 잡은 보성선원. 대웅전 외엔 종무소며 요사채까지 모두 조립식 임시 건물인 이 절의 공양간 안이 아침부터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인다. 떡국을 끓이고 나르는 자원봉사자들과, 그걸 맛있게 드시는 동네 어르신 200여명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주지 한북(漢北·52) 스님 앞에 앉은 한 할머니는 식탁 너머로 꼭 잡은 스님 손을 놓을 줄 몰랐다. 스님이 말했다. "화요일마다 공양 대접하는 거 아시잖아요. 빼먹지 말고 꼭 오세요." 보성선원이 있는 송현1동에만 65세 이상 노인이 2000여명. 상당수는 홀로 혹은 부부만 산다. 스님은 "새해 첫날이라 어르신들이 더 외로워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초하루 법회에 100명쯤 모이는 작은 사찰이지만, 보성선원의 '착한 일'은 끝이 없다. 어르신 공양 대접에 쓰는 돈이 한 해 2000만원 정도. 연말에는 중학교 진학을 앞둔 어려운 집 아이들에게 교복을 지원하고, 초파일에는 장학금을 나눠 준다. 2400만원 정도 든다.

작년 연말 교복 전달식은 더 특별했다. 자식을 잃은 불자들이 "우리 애 생각하며 써 달라"고 스님에게 장학기금을 전해온 덕이다. 서울에 사는 한 50대 여성 불자는 3년 전 대학교 1학년이던 큰딸을 잃었다. 사소한 일로 꾸중하던 중 "그렇게 말 안 들으려면 나가라"고 소리쳤는데, 딸이 그만 자살해 버렸다. 우울증에 시달리다 겨우 심신을 추스른 어머니가 스님을 찾아왔다. "살아 있었으면 다 딸에게 썼을 돈인데…. 1년에 500만원씩 낼 테니 스님이 알아서 써주세요."

이날 떡국 공양 봉사자로 참여한 신도 전정숙(48)씨도 작은 힘을 보탰다. 전씨는 12년 전 여섯 살이던 아들을 의료사고로 잃었다. "큰 애가 살아 있었으면 올해 고 3이 됐을 텐데, 그동안 사는 게 바빠 주변에 눈 돌릴 겨를이 없었어요. 어려운 집 아이들 교복 사는 걸 돕고 싶다고 했더니 스님이 흔쾌히 받아주셨네요."

보성선원은 이렇게 신도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을 기초생활수급자 가정 자녀 60명의 교복 비용으로 지원했다. 1800만원이 들었다. 장학금 통장에 남아있던 돈이 다 소진됐다. 스님은 "초파일에 따로 줘야 할 장학금이 걱정도 됐지만, '돈이 없으면 절 살림을 줄이자'는 생각으로 눈을 딱 감았다"며 웃었다.

보성선원 신도들은 또 매주 화요일마다 음식을 장만해 홀로 사는 노인 20여명에게 배달을 나간다. 분기에 한 번씩 노인들을 촬영해 액자까지 만들어주는 영정사진 봉사도 진행한다. 한북 스님은 2008년 1월 보성선원에 주지로 왔다. 그 전엔 어르신 공양이나 장학금 지급 같은 건 하지 않던 절이었다. "처음엔 신도 분들도 주지가 한다니 마지못해 시작했죠. 그런데 가진 것 나누고 시간 내 봉사하는 게 묘한 힘이 있거든요. 그것 자체로 기쁘고 즐거우니까. 한 달에 한 번이던 공양 대접이 세 번으로 늘고, 요즘은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인근 불교 무료급식소 '선재마을'에 봉사도 나가요. 저보다 더 열심이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