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도 복지재정도 "내일로 미루지, 뭐"… 내일의 재앙 부르는 이 한마디

"내일 드디어 기말고사 첫날이다. 그런데 어쩌지. 공부를 전혀 못 했는데…." 매일 공부를 미루다가 시험 전날이 돼서야 후회하며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학생이 많다. 많은 사람이 학창 시절에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재밌는 것은 다음 시험 때가 되면 다시 공부를 미루고 놀다가 시험 전날 벼락치기를 한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모습들에 오랫동안 곤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애덤 스미스 이래로 경제학이 보는 인간은 이기적이면서 셈이 빠르고 합리적이라서 자신에게 손해되는 일은 하지 않는 존재인데, 그런 인간이 매번 중요한 일을 미루고 후회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개인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국가 재정이 파탄 난 유럽 일부 국가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그래서 많은 경제학자가 문제의 본질을 알고자 노력해 왔다. 이런 퍼즐에 대한 답으로 제시된 게 바로 '하이퍼볼릭 할인율(hyp erbolic discount)' 이론이다.

◇사람들은 미래보다는 오늘에 관심

이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가설인데, 쉽게 말해 대부분의 사람은 '오늘 공부하고 내일 공부하는 것'보다 '오늘 놀고 내일 공부하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일 놀고 모레 공부하는 것'과 '내일 공부하고 모레 노는것'을 비교할 때는 대부분의 사람이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 힘든 일을 하느냐, 아니면 이 일을 미래로 미루느냐 하는 것이지, 미래의 어느 시점에 그 힘든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가설이 현실에서 의미하는 바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예를 들어 사흘 후 월요일이 시험이라고 하자. 물론 금, 토, 일요일 3일간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을 잘 받겠지만, '오늘 금요일은 놀고 토, 일요일 이틀만 열심히 공부해도 시험을 잘 볼 것 같다'는 생각이 어느새 파고드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주 똑똑하고 합리적인 당신은 내일부터 이틀간 공부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금요일을 즐긴다.

문제는 내일 토요일 아침이다. 드디어 공부하기로 했던 내일 토요일이 이제는 바로 오늘이 된 것이다. 분명히 어제 금요일에는 현재가 아닌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나 별 차이가 없었지만, 잠을 자고 일어나서 토요일 아침이 되어보니 토요일은 너무도 중요한 현재가 된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토요일에 하루 종일 공부하려 했다니 어제의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하는 기분이 든다. 성적이야 좀 떨어지겠지만, 아무래도 오늘까지 놀고 내일 일요일만 열심히 공부해도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토요일 아침이다. 그래서 우리는 토요일에도 공부를 쉬고 만다. 결국 이번에도 일요일 하루 동안 벼락치기를 하게 되고 성적은 오르지 않는 것이다.

◇'힘든 일 미래로 떠넘기기' 반복

이때 주목할 것은 금요일에 내가 세운 계획을 토요일의 내 자신이 변경한다는 것이다.

금요일의 나는 금요일에는 놀고 토, 일요일 이틀을 열심히 공부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물론 금요일의 나는 이런 계획을 세움에 있어서 토요일의 자신이나 일요일의 자신과 상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토요일 아침에 토요일의 자신이 결정할 때가 되면 금요일의 자신이 세운 계획이 모두 틀린 것으로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 번 상의도 없이 이렇게 마음대로 자신에게만 유리한 계획을 세운 금요일의 내가 토요일의 나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원망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금요일의 나를 원망하는 토요일의 나도 일요일의 자신의 의견은 생각하지 않고 토요일의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계획을 수정하게 된다. 하이퍼볼릭 할인율 가설에 따르면 이처럼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기도 하지만, 과거의 자신, 현재의 자신, 미래의 자신들과도 치열한 머리싸움을 벌이며 살고 있는 존재이다. 현재의 자신은 모든 즐거운 일은 현재에 하고 모든 괴로운 일은 미래의 자신에게 떠넘기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의사 결정의 결과로 시험을 망치면서도 벼락치기 공부를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도 미래 세대에 빚 떠넘겨

국가 차원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해도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과 10년 후의 대한민국 국민은 다르다. 우리는 2013년에 정부의 빚을 늘려서 많은 복지 혜택을 누리고, 2023년부터 그 빚을 갚도록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 경우 2013년의 대한민국 국민이 자신의 부담을 모두 2023년의 자신들에게 떠넘기는 셈이 된다. 정치인들은 경제가 어려운 현재에 복지를 좀 늘리고 10년 후인 2023년부터 그 빚을 열심히 갚기 시작하면 대한민국 경제엔 큰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득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2023년이 되면 우리는 "아 맞다. 올해부터 그만 놀고 열심히 일해서 빚을 갚기로 했지. 이제 열심히 일하자"라고 할 것인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10년 전의 우리 자신에 대해 큰 원망을 할 것이다. 자기들만 실컷 놀고는 이제 와서 억울한 우리들만 뼈 빠지게 일해서 빚을 갚도록 계획을 세웠다고 말이다. 그때 우리는 다시 '10년 동안 더 쉬다가 2033년부터 열심히 빚을 갚도록 하자'며 계획을 바꿀 것이다.

◇미국이 채무 한도 제도를 만든 이유

이런 일을 막으려고 미국의 의회는 '채무 한도(debt ceiling)'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국가의 빚이 특정한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해 현재의 미국 국민이 미래의 자신들에게 빚을 넘기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빚은 늘어만 가서 요즘 재정절벽(fiscal cliff)의 위기를 맞고 있다. 결국 미국의 의회는 다시 채무 한도를 늘릴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과거의 자신들이 세운 족쇄를 현재의 자신들이 차고 있기에는 너무도 억울하기 때문에 계획을 바꿀지도 모른다.

이번 대선 기간 중에 후보들은 한결같이 오늘의 부담을 미래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떠넘기자는 공약들을 강력히 주장했다. 지난 IMF 외환위기에서 정부가 빚을 지면서 위기를 넘겼고, 이제 그 빚을 2013년도의 우리가 갚을 때가 되었지만, 역시 우리는 10년 후의 우리들에게 다시 그 짐을 넘기려고 하는 셈이다.

때로는 경제학 이론이 너무도 정확하게 맞아 들어가는 것 같다. 경제학자인 필자로서도 너무 기분 나쁜 일이다.

☞하이퍼볼릭 할인율 (hyperbolic discount)이론

현재가 미래에 비해 훨씬 더 가깝고 중요하게 느껴지며, 현재에서 멀어질수록 중요도는 더욱 떨어진다는 인간의 심리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한 이론. 특히 '오늘이 내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느낌이 '내일이 모레보다 더 중요하다'는 느낌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