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R&D 연구소] 디젤엔진 생산 세계 3위… "품질도 BMW 잡겠다"

지난달 27일 경기도 화성시 장덕동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엔진시험실 2동'이라 쓰인 회색 건물 철문을 힘겹게 열어젖혔다. 수백m는 족히 돼 보이는 적막하고 긴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 양쪽으로는 수십 개의 방이, 그 안에는 다시 각각 20개의 작은 실험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실험실 한 곳에 들어섰다. 벌거벗은 엔진이 수십 가닥 전선으로 연결된 채 열기와 굉음을 내뿜으며 돌아가느라 분주했다. 방마다 엔진이 하나씩 들어찬 모습을 보니 신생아 인큐베이터가 줄지어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엔진 출력과 미세한 배기가스 데이터들을 통해 최적의 연소 조합을 찾아내는 과정이죠."(강용석 책임연구원)

◇BMW·폴크스바겐 뛰어넘는 디젤엔진이 관건

현대·기아차 화성연구소에는 8000여명의 공학도가 모여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밤샘 작업을 하는 곳이 바로 이 승용 디젤엔진 개발팀이다. 올겨울은 특히나 밤샘작업이 잦다. 조만간 쏘나타·그랜저급 승용차에 들어갈 2.0·2.2L급 디젤엔진을 만드는 게 첫 미션. 유럽·미국이 3년 안에 새로 적용할 강화된 배기가스 기준을 만족하는 클린디젤 엔진을 다른 업체보다 먼저 만들어내는 게 두 번째 미션이다. 연구원들은 조를 짜서 수백 개에 달하는 실험실 불을 24시간 꺼뜨리지 않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틈날 때마다 "BMW·폴크스바겐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세계 5위 입지를 굳힌 상태다. 그러나 3위권 도약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유럽 선진 업체들보다 디젤엔진 기술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결정적 이유다. 디젤엔진은 연료 특성상 가솔린엔진보다 10배 높은 압력으로 연료를 정밀하게 분사하는 까다로운 제어기술이 요구된다. 연료량과 분사타이밍 등을 적절하게 조합하기 위한 경우의 수만 1만5000가지가 넘는다. 배기가스를 깨끗하게 걸러내는 기술도 만만치 않다.

현대·기아차는 1990년대에야 디젤엔진 개발에 뛰어들었다. 경쟁업체들보다 한참 늦었다. 국내에선 디젤차가 시끄럽고 매연 심한 '몹쓸 차'라는 고정관념이 깊었던 탓이다.

또 가솔린 엔진 위주인 미국 시장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 유럽형 소형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SUV)에 들어가는 U엔진·R엔진을 내놓고 호평을 받으면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어느새 디젤엔진 생산량으론 폴크스바겐·푸조시트로엥 다음가는 세계 3위까지 올랐다.

◇"쏘나타·그랜저 디젤차로 세계적 평가받겠다"

핵심 차종인 쏘나타·그랜저급에 들어갈 중형 세단용 디젤엔진은 아직 못 내놓고 있다. 작년 BMW 520d나 320d 같은 차가 수입차 시장을 휩쓰는 것을 보고도 이렇다 할 '맞수'를 내놓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폴크스바겐은 2.0L TDI(터보직분사디젤) 엔진 하나로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골프, 파사트 등 140만대를 팔아치웠다. 유럽은 디젤차 판매량이 50%를 넘었고, 우리나라도 지난해 수입 신차 중 절반 이상이 디젤차였다. 각국의 이산화탄소 규제가 강화될수록 디젤차 수요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디젤차 개발의 4대 축은 '실용성능, 소음·진동, 연비, 생산원가'입니다. 이 중 연비와 소음·진동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와 있습니다."(승용디젤엔진시험팀 전제록 이사) 전 이사는 "다만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마음먹은 대로 나간다는 느낌(실용성능)을 독일차만큼 끌어올리기 위해 저중속 토크를 강화하고, 가솔린 엔진과의 가격 차이를 획기적으로 줄인 신개념 엔진을 만드는 게 관건"이라면서 이 부분을 중점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투싼·스포티지·싼타페 등에 들어간 R엔진을 세단형으로 개조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경쟁력 있는 새 중형세단 엔진으로 경쟁하겠다는 계획이다. 엔진 회전 수에 따라 공기흡입 밸브의 여닫힘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가변밸브타이밍 기술과 저속·고속형 2단 터보 등 신기술을 대거 적용한 엔진도 조만간 상용화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