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스토밍보다 마음 여는 '하트스토밍'이 먼저다

연말 연초가 되면 대부분의 기업은 새해 사업 계획을 세우고 전사적으로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흔히 따르는 절차 중 하나가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미래학자 롤프 옌센(Jensen)은 '머리'로 아이디어를 짜내는 브레인스토밍보다 '마음'으로 생각과 정서를 나누는 하트스토밍(heartstorming)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기업 관점에서 하트스토밍이란 조직원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한 비전을 향해 움직이도록 하는 '정서적 연대'라고 할 수 있다.

◇거리감 없애기

필자가 삼성전자 미국 가전 부문을 맡았을 때 이야기다. 당시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전략을 세우고, 유통 파트너들에게는 우리가 당시에 가졌던 역량보다는 비전과 가능성을 어필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통업체를 직접 만나 설득해야 할 현지 직원들의 움직임은 기대 이하였다. 일을 어떻게든 이루어내기보다는 '안 되는 이유'를 회사나 다른 부서에서 찾기만 했다.

"신제품도 제때 보내주지 않으면서 매출만 독려하는데 이렇게 해서 1등 기업이 될 수 있나" 하는 식의 불만이었다. 직원들은 회사가 세운 비전과 논리를 이해는 하지만, 공감이 부족했던 것이다.

IMF 외환 위기로 회사 전체가 힘들 때였는데, 특히 미국 법인은 쌓이는 적자와 책임자들의 잦은 교체로 분위기가 더 어수선했다. "새로 맡은 저 사람도 저러다 언제 또 떠날지 모르겠다. 언제는 회사가 잘해보겠다고 하지 않았나?" 오래 근무한 직원일수록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거래처도 설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리더급 미국인 직원 50여명과 한국인 주재원 10여명이 함께 1박 2일 워크숍을 떠났다. 워크숍의 목적은 단 하나, '우리는 하나'가 되는 일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윗사람과 아랫사람, 주재원과 현지인의 간극을 없애고 모두가 마음을 터놓고 솔직한 대화를 하도록 이끌어야 했다. 그래서 통상 워크숍 때 쓰는 일반적인 호텔 대신 가족 단위 휴가객들이 즐겨 찾는 빌라 형태의 숙소를 잡았다. 일정이 끝나면 각자 방에 들어가 있지만 말고, 모여 앉아 같이 이야기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빌라에는 침실 세 개와 거실 하나가 있었다. 이 경우 회사에서 직급이 높은 순으로 좋은 침실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보다 수평적 문화인 미국에서도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날 우리는 평소와 다른 침실 배치를 선택했다. 화장실까지 딸려 있는 가장 큰 방을 가장 직급이 낮은 직원이 쓰고, 상사는 거실에서 자도록 관리자들과 미리 의견을 맞췄다. 필자도 물론 가장 불편한 거실을 차지했다.

◇상향식 소통

방 배정 후 세미나룸에 전원이 둘러앉았다. "오늘은 집에 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편히 술도 한잔 하면서 서로 간격을 좁혀 보자"고 운을 뗀 뒤 술잔을 돌렸다. 안 마시겠다는 사람이 있을 때는 "제가 대신 마시지요" 하고 말하며 필자가 연거푸 서너 잔을 대신 마셨다. 그러다 술을 못 먹는 한국인 주재원 순서가 오니 미국인 직원이 "내가 대신 먹겠다"며 나서는 등 '현지인 흑기사'도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됐다.

숙소 배정의 서프라이즈와 흑기사들의 등장은 모두의 마음을 열게 했고 자연스럽게 말문도 열린 듯했다. 그동안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내려다 보니 직원들 간에 소통이 부족해 회사의 비전이나 지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많고 '속도전의 후유증'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예컨대 당시 삼성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1등 기업이 되자는 목표를 세웠는데, 미국인 직원들은 '절대 이룰 수 없는 목표'라며 회사 비전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 드러났다. 또한 '빨리빨리' 일처리를 주문하는 주재원의 요구에 미국인 직원들은 '몰아붙이기식'이라며 강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평소라면 쉽게 털어놓지 못할 고충과 요구를 모두가 편하게 말하고 있었다. 미국인 직원들의 불만을 알게 된 주재원들은 삼성의 비전과 업무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설명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사실은 어느덧 모두가 쓰는 주어가 '우리(we)'가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솔직한 생각을 알 수 있는 상향식(bottom-up) 소통이었으며, 개인의 개성과 감정을 중요시하는 미국식 문화와 팀 속에서 조화를 강조하는 한국식 문화가 시너지를 이루는 소통이었다. 그야말로 하트스토밍의 생생한 현장이었다.

◇브레인스토밍보다 하트스토밍이 먼저

워크숍 이후 모든 구성원이 '우리'를 먼저 생각하고, 남이 아니라 스스로에게서 문제점을 찾기 시작했다. 워크숍에 참석하지 않은 직원들에게도 "워크숍에서 우리가 느끼던 불만이나 바라는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보스가 소파에서 자고 내가 큰 방을 썼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면서 자연스레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었고 목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인간적인 유대감으로 뭉친 우리는 삼성을 업계 1위로 만들어 낸 강력한 팀이 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필자가 삼성을 떠나 소니 전직을 고심할 때 실상 필자를 가장 힘들게 했던 부분도 바로 조직원들과 나눈 이런 유대감이었음을 기억한다.

마음이 통해야 생각도 더 잘 통한다. 가슴이 열려야 머리도 열리는 법이다. 브레인스토밍에 앞서 하트스토밍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트스토밍의 방법은 조직의 상황이나 때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이때, 직원들에게 '머리'로 비전과 전략을 따르기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마음'으로 소통하려는 자세는 언제 어디서나 필요할 것이다.

☞하트스토밍(heartstorming)

미래학자 롤프 옌센이 한 말로 조직원들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내 하나로 모으는 과정을 의미한다. 조직원들이 생각과 마음을 나눔으로써 공감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조직원들의 이성적인 사고를 자극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도록 유도하는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과 대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