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ch19] "토속음식 전령사 사명감 느껴… 엄마의 밥상, 같이 드실래요?"

"제 고향 충청북도에선 청국장을 '담북장'이라고 불러요. 어릴 적 엄마는 보글보글 끓는 담북장 찌개에 큼직하게 두부를 썰어 넣으셨죠. 그리고 깨끗한 냇가에서 건진 올갱이(다슬기)로 끓인 구수한 올갱이국! 이런 음식들이 머리칼을 키우고 뼈대를 단단하게 해줬어요."

방송인 오미희(55)는 음식 얘기를 할 때마다 눈이 반짝였다. 연기자와 DJ로 34년 동안 활동해온 그가 사라져가는 우리 토속 음식을 알리는 전령사가 됐다. 매주 금요일 밤 7시 50분 방송되는 TV조선의 음식 다큐멘터리 '미각기행 오곡밥'의 내레이터를 맡은 것.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오미희는 "PD가 얄밉고 부럽다"는 말부터 했다.

"방금 녹음을 끝냈는데 화면에 강원도 정선의 토속 음식인 채만두, 귀리범벅, 콧등치기 국수가 나왔어요. 직접 찾아가서 전부 맛봤을 제작진이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요. 음식은 배설되지만 혀끝은 오래토록 기억하거든요."

'미각기행 오곡밥'은 전국의 오지 마을을 찾아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토속 음식과 이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는다. 암 투병 경험이 있는 오미희는 "나에게 음식만 한 위로는 없었기에 더 각별한 프로"라고 했다. "몸이 아플 때나 마음이 아플 때나 음식이 힘이 됐어요. 누군가에게 음식을 차려준다는 것은 마음도 함께 준다는 뜻이거든요. 차려준 정성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남이 직접 해준 음식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요. 좀 아까도 내레이션을 하면서 한달음에 정선으로 달려가고 싶었죠(웃음)."

그는 "잊히는 시골 음식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자부심 이상의 사명감을 느낀다"고 했다. "음식은 삶의 자취가 밴 문화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밥을 할 때 종지에 담아 솥에 함께 찐 새우젓을 반찬으로 즐겨 드셨어요. 엄마는 장조림을 할 때 메추리알은 지저분하다며(웃음) 송이버섯을 함께 졸이셨고, 들기름을 발라 바삭하게 구운 김에 밥을 싸주셨죠. 제 나이 분들이면 간직하고 있을, 그러나 사라져가는 기억들입니다. 세월이 흐르며 어쩔 수 없이 잊히는 것도 있지만 시골 음식처럼 고증하고 보존해야 할 것들이 있어요. 우리 소중한 시골 음식들을 지키는 데 제 목소리가 쓰인다는 건 감사한 일이죠."

1979년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한 오미희는 TV와 영화에서도 활발하게 모습을 보였지만, 차분하고 감성적인 목소리로 듣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DJ로도 친숙하다. 80~90년대 KBS '가요광장' MBC '가요응접실' 등 간판 라디오 프로들을 거쳐 지금은 CBS FM '행복한 동행(밤 8~10시)'으로 청취자들과 만난다.

"요즘은 선곡 시스템이 디지털로 바뀌었지만, 예전엔 일일이 종이 재킷에서 LP를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놨죠. 그때 나던 '지지직' 소리가 그리워요. 세월이 함께 연주하는 소리죠. 시골 음식도 LP랑 비슷하네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윽하고 아련해 더 매력적인…."

정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