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39] 新여성도 쟁취하지 못했던 '화장품의 자유'

"일색(一色) 소박은 있어도 박색(薄色) 소박은 없다"는 옛말에는 아름다움을 좇는 여심(女心)을 옥죈 유교적 도덕관이 짙게 배어 있다. 조선시대에 아무리 천하에 제일가는 미인이라도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하나인 대(代)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면 내쫓김을 당해도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운 사대부들의 미의식은 이중적이었다. 양반가 여인들이 티가 나게 화장할 경우 경멸이 담긴 표현을 서슴지 않았지만, 첩을 들이고 기생을 품을 때의 기준은 행실과 품성 같은 내면의 미가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미모였다. 따라서 얼굴에 흰 분을 바르고 눈썹먹으로 아이라인을 그리는 분대(粉黛) 화장은 사대부들의 완롱(玩弄)거리였던 기생과 첩의 전유물이었다.

1916년 발매되어 1937년 자진 폐업할 때까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던 재래 연분(鉛粉) 제조법으로 만든 박가분(朴家粉)의 주된 소비자도 기생들이었다. 미인박명(美人薄命)이란 말마따나 기생들의 숙명은 납 중독으로 인한 요절이었다. '아무리 공력을 들여 화장을 하여도 결국 좋다고 생각되는 것은 자연적 미다. 눈썹을 시꺼멓게 그리든지 사람이라도 잡아먹은 것같이 입술에 잔뜩 연지를 칠하는 것은 결코 예쁘게 안 보인다.' 1927년 6월호 잡지 '신여성'에 실린 '자연미의 화장법'이란 글이 잘 말해주듯 남성 지배 사회가 낳은 짙은 화장에 대한 사회적 금기는 자기 몸의 주권을 찾으려 한 일제강점기하 신여성들도 깨뜨리기 어려운 철옹성이었다.

입에 풀칠조차 어려웠던 궁핍도 여성의 화장을 제약한 요인이었다. 모든 물자가 귀하던 1950년대 어깨에 멘 북을 '동동' 울리며 "앞집 예쁜이, 뒷집 꽃분이, 옆집 곱단이. 어서어서 나와요. 돈 없어 못 사면 공짜로도 발라줘요"라는 재담을 던지며 덜어서 팔던 '구리무(크림의 일본식 표현)'도 손톱 끝에 찍어 아껴 바르던 귀물(貴物)이었다. '동동 구리무' 장사가 거리에서 사라진 1960년대 이후 기지개를 켠 화장품산업은 양성(兩性) 평등사회를 향한 여성들의 도전과 함께 성장 가도를 달렸다. 남자들도 화장을 하는 오늘 여성들의 화장 문화에 족쇄를 채웠던 가부장권(家父長權)은 옛이야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