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원高·엔低… 한국 수출경쟁력 급속 저하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지난 11일 17개월 만에 처음으로 달러당 1050원대로 하락(원화가치 상승)하고, 100엔당 원화 환율은 32개월 만에 가장 낮은 1100원대에 돌입(엔화가치 하락)했다. 이에 따라 우리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원고(高), 엔저(低)' 추세가 지속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원화 시장의 경우 외환 당국이 시장에 개입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고, 엔화도 아베 일본 총리가 달성하겠다고 공언한 '달러당 90엔'이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주요국 통화 중 원화 강세가 가장 커

13일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초 이후 최근까지 원화 가치는 8.4%가 올라(환율은 하락) 세계 주요국 통화 중 강세 추세가 가장 컸다. 반면 일본의 엔화 가치는 같은 기간 12.0% 떨어졌다(환율은 상승).

원화 가치가 상승한 것은 작년 초 이후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이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해 돈을 푸는 것)를 강화하면서, 늘어난 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우리나라 국채 등에 몰리면서 외국인 자금 유입이 늘었기 때문이다. 반면 엔화 가치는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지난달 취임한 아베 신임 총리가 "윤전기로 돈을 찍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면서 '달러당 90엔'이란 환율 목표까지 제시해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원고, 엔저' 추세에 따라 우리 기업이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원화 환율이 떨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작년 11월 코트라가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절반이 넘는 수출 대기업들이 감내할 수 있는 환율을 달러당 1050원 선이라고 대답했다. 또 한국무역보험공사의 조사 결과로는 수출 중소기업의 손익분기점이 되는 환율은 달러당 1102원으로 파악돼, 이미 많은 중소기업이 채산성 악화를 겪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원화 강세, 엔화 약세 현상이 지속되면 올해 우리나라 수출은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작년 12월 우리나라의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5%가 줄어 3개월 만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엇갈리는 환율 전망

앞으로 원화 환율은 선진국의 돈 풀기가 지속되면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있는 반면,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 당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고 경상수지가 악화되면 환율이 오름세로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하락할 여지가 크지 않다는 전망도 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국가 신용등급 상승 등으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의 적정 수준이 달러당 900원대 중후반으로 낮아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올해 상반기에 달러당 1000원 선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허재환 대우증권 연구원은 "원화 환율이 1030원 수준까지 떨어지면 무역 흑자가 줄어들면서 환율이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며 "올해 세 자릿수의 환율을 볼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엔화 환율도 상승 추세가 계속된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최근 국제금융센터가 13개 글로벌 투자은행의 1년 후 엔화 환율 전망 평균치를 조사한 바로는 달러당 83.7엔으로 오히려 지난 11일 환율(달러당 89.1엔)보다도 낮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아베 내각의 엔저 정책은 일본 국채 금리 상승(국채값 하락)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한계가 있다"며 "단기적으로 달러당 92엔까지 오를 수 있지만, 올해 평균 엔화 환율이 90엔대로 올라서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에 대한 충격도 예상보다는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원화 강세와 엔화 약세가 자동차, 기계류 등의 수출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우리 수출 품목들이 품질·브랜드 등 비(非)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전반적으로 과거보다 영향이 적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