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석 깔아 소비자 즐기게 했더니… 기업 호감도 '껑충'

상품이나 서비스 평(評)뿐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생활습관까지 시시콜콜 늘어놓는 새로운 '수다쟁이'들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새로 문을 연 식당의 메뉴와 가격, 맛뿐 아니라 언제, 누구와, 왜 갔는지, 갈 때 기분이 어땠는지까지 주절주절 늘어놔야 직성이 풀리는 식이다.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열망을 분출하지 못하고 있던 이들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만나면서 날개를 단 격이 됐다.

기업들은 '표현의 장(場)'을 열어줌으로써 표현의 욕구가 넘치는 이들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마음껏 욕구를 해소할 뿐인데, 이들의 행위는 신기하게도 지켜보는 다수의 소비자에게 광고판 역할을 하게 된다. 가려운 곳을 세련되게 긁어주면서 기업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충성심 강한 소비자군(群)을 얻게 되는 셈이다.

◇우리 광고로 당신만의 영화 만드세요

현대카드가 지난 연말 시작한 기업광고 'Make your rule'이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이들의 표현 욕구를 제대로 자극했기 때문이다. 광고 자체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은 여느 광고의 범주에 들어 있다. '누구의 인생도 카피하지 말라(멘토편)', '너만의 주먹을 뻗어라(복싱편)' 두 편에서 좌절하는 청춘들에게 '단 한 번만이라도 너만의 생각, 너만의 방식으로 살아본 적 있느냐'라고 묻는다.

여기서 끝냈으면 특별할 게 없을 텐데, 이 광고에 감동한 이들을 홈페이지로 불러모았다. 이들은 자기 얼굴 사진을 올리고 자기가 '영화감독'이 되어 이 광고로 용기를 주고 싶은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두 편의 광고 중 하나에 친구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중간마다 삽입해 한 편의 완성된 자기만의 광고를 만드는 것이다. 한 발 나아가, 이 광고를 누구나 볼 수 있게 했다. 심지어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감독명', '친구명'으로 검색해볼 수도 있다.

나만의 영화,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SNS·기업 블로그에 올리는 형식은 현대자동차도 시도했다. 최초의 인터렉티브 광고, '소셜 이모션 필름(Social Emotion Film)'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자동차와 인간의 교감을 테마로 한 글로벌 캠페인 테마 '리브 브릴리언트(Live Brilliant)'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애플리케이션을 고안해냈다. 이 애플리케이션으로 "지금, 나는 ○○하러 가는 길"이라는 내용으로 위치, 감정상태, 사진, 동영상 등을 올리면 이 사이트에 세계 각 지역의 다른 이들이 올린 것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영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터키어 등 다양한 언어를 지원해 다른 사람들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엿볼 수 있고, 자기의 일상도 표현할 수 있다. 광고를 제작한 이노션월드와이드는 "사생활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과정에서 브랜드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고,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끼리 형성된 유대감이 브랜드 충성도를 공고히 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아기 옹알이, 남들도 궁금할까?

글로벌 기저귀 브랜드 하기스가 1년 전 벌인 '옹알이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캠페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기 자식을 자랑하고 싶은 엄마들의 마음을 정확히 공략했다. 뜻 모를 아기 옹알이 영상을 찍어 캠페인 사이트에 올리면 하기스에서 나름대로 전문가들을 동원해 이를 재미있게 '통역'해서 자막 처리한 뒤 올려주는 식이다. '우리 아기 옹알이가 사이트에 올랐다'며 블로그 이웃 등에게 열심히 퍼 날라 자연스럽게 브랜드 광고 효과가 배가됐다.

하기스 자체 조사 결과, 이 영상 올리기 캠페인에 참여한 소비자들의 약 80%가 브랜드에 대한 호감,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갔다고 답했다. 소비자가 습관적·일상적으로 구매하는 대표적 저(低)관여 상품인 기저귀 브랜드지만, 적극적인 관심을 유발해 관여도를 높인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튜브가 LG전자 후원으로 2010년 진행한 글로벌 프로젝트 '라이프 인 어 데이(Life in a Day)'는 2010년 7월 24일 하루에 촬영한 영상 8만여 개를 모은 대작이다. 유명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과 케빈 맥도널드는 총 4500시간에 달하는 영상 중 331명이 올린 1125편을 편집해 희로애락을 표현한 한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소비자에게 즐겁고 유용한 표현의 기회를 제공해 브랜드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되게 한 것이다. 이 영화는 2011년 선댄스 영화제 시사회에 공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