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과 니트 서로를 메우다

언뜻 조바위(조선시대 부녀자들이 쓰던 방한모)를 연상시키는 이 모자는 알고 보면 지극히 수학적인 구조로 짜여 있다. 가로·세로 7㎝의 정사각형이 프랙탈(fractal·작은 구조가 전체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것) 방식으로 반복돼 복잡하지만, 니트로 짜여 역설적으로 소박한 느낌을 준다. 이런 방식으로 망토, 가방, 스카프, 목도리 등 다양한 패션 소품이 탄생했다.

지난달 막을 내린 국내 최대 공예전시회 '제7회 공예트렌드페어'에서 개인·그룹전 부문 최고상인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신예선(40)씨 작품 얘기다. '재발견, 공예와 지역성'이란 주제로 열린 이 행사에서 신씨는 '구조적인 사각형(constructive squares)' 시리즈로 문화부장관상을 받았다. "옛날 공예 기법과 현대적 감각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는 평가다.

"설치미술만 줄곧 해오던 저로선 큰 기대 없이 '한번 해볼까' 싶어 내놓은 작품이었어요. 아주 모던하다고 생각하며 만든 것이었죠."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신씨는 "수상 소식이 무척 기뻤지만 사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란 평가를 받을 줄은 전혀 몰랐다"며 웃었다. "전통공예에 자주 쓰이는 오방색(청·적·황·백·흑색)을 사용해 그런 인상을 준 듯해요. 누군가는 '패턴이 살짝 늘어져 비정형적 사각형으로 보이는 게 마치 한옥을 연상시킨다'는 말도 하더라고요."

얼핏 평범한 공예품으로 보이지만, '구조적인 사각형' 시리즈는 양모(羊毛)를 촘촘하게 짜 각각 다른 색깔로 덧대 니트 특유의 느슨하게 처지는 느낌을 완벽하게 보완했다. 수편기로 짠 정사각형 패턴은 니트가 끊어지는 부분마다 의도적으로 살짝살짝 안감을 노출해 의외의 대조 효과를 준다. 수상 후 갤러리와 아트숍에서 계약 의뢰가 쏟아졌고, 올해 가을 열릴 런던 크래프트페어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예상 밖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신씨는 사실 '패션 DNA'를 가진 작가다. 홍익대 섬유미술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패션회사에 잠시 몸담았던 그는 영국 패션 명문학교 세인트마틴에서 니트 디자인을 공부했다. "앞으로 재밌고 유쾌한 작업을 하고 싶어요. 가장 두려운 게 '쟤, 전보다 못해' '나이 드니까 감 무뎌지네'란 소리예요. 그러지 않으려면 꾸준히 공부하고 고민해야죠. 예술이든 공예든, 삶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의외성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