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低 날개 단 日, 4배 화질 OLED TV로 대반격

최근 끝난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일본 소니의 히라이 가즈오 사장은 "소니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히라이 사장은 세계 최대·최고 화질의 OLED TV인 56인치 4K OLED TV 를 깜짝 선보이면서 "소니가 한 발 더 앞서 나가게 됐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한국 업체를 추격하고 있는 일본 TV 업체들이 새로운 기술 진보와 엔저(低)를 배경으로 부활을 노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파산을 피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나오는 혁신적 시도와 1년 만에 엔화 가치가 원화에 대해 22%나 떨어지는 대외 환율 여건을 바탕으로 TV 왕국 재건을 기대하고 있다.

일본 전자업체들은 LCD·반도체·스마트폰·OLED 등 다른 시장에선 이미 몰락했거나 진출조차 못하고 있다. 하지만 TV 시장에서는 국내업체에 1·2위를 내준 충격을 차츰 추스르면서 최근 본격적인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기술적 도전 다시 시작

일본 업체들은 TV 사업의 양대 축인 '기술'과 '가격' 두 가지 측면에서 최근 모두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이번에 소니가 내놓은 4K OLED TV는 비록 시제품이긴 했지만 국내업체들이 지금껏 내놨던 55인치 OLED TV보다도 무려 4배나 화질이 좋았다. 특히 OLED TV 시장에선 여태껏 국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독보적이었다는 점에서, 업계에선 작지 않은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소니는 작년 8월에는 당시 삼성과 LG의 OLED TV 시장 선점에 맞서, 기존의 LCD TV 화질을 4배 개선한 UHD TV를 내놓으며 글로벌 TV 시장 판세 흔들기를 시도했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소니와 함께 세계 TV 시장을 호령했던 파나소닉 역시 이번 CES에서 56인치 4K OLED TV를 처음 선보였다. 파나소닉은 특히 OLED TV 제조 방법 측면에서 새 시도를 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목받았다.

◇엔저 업고 반격 시도

최근의 시도는 일본 전자회사들의 처한 위기감의 결과로 분석된다. 소니와 파나소닉은 지난해 연이은 신용등급 강등과 천문학적 적자에 시달리며 회사문을 닫지 않기 위해 수차례 구조조정을 벌였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 국내 업체들에 속수무책으로 자리를 내줬지만 이젠 더 이상 주력사업인 TV에서 승부수를 던지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일본 업체들은 외부 요인이 좋아지고 있는 것에도 내심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2011년 일본 대지진, 2012년 극심한 엔고 등 어려움만 겪었던 예년과는 달리 올해는 일본 정부의 강한 경기 부양 의지 등 강력한 호재를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엔저는 점차 일본 업체들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TV는 다른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이 더 치열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TV 시장 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가 최근 4년간 국가별 평판 TV 평균 판매 단가를 산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TV 업체들의 평판 TV 평균 판매 단가는 2009년 631달러에서 작년 486달러로 떨어졌다. 한국 TV 업체들의 수치도 같은 기간 686달러에서 579달러로 하락했다. 글로벌 불황으로 현재의 TV 시장이 상당한 가격 경쟁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의미다.

한양대 홍성태 교수(경영학)는 "일본 업체들이 엔저를 바탕으로 단가 경쟁을 벌이면 국내 업체들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계 1·2위를 달리는 국내 업체들도 일본 업체들의 도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은 작년 글로벌 불황 속에서도 5000만 대라는 당초 판매 목표를 무난히 달성한 여세를 몰아 올해도 격차를 더 벌리겠다는 입장이고, 이미 초고화질 TV인 UHD TV까지 판매하고 있는 LG전자도 기술 경쟁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다.

한편 국내 전자업체들은 전반적인 원·달러 환율 하락의 피해에 대해서는 환헤지·거래처 현지통화결제 등을 통해 최소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환헤지

'환(換)'과 '헤지(hedge·손실대비책)'의 결합어. 기업들이 급격한 환율 변동으로 인해 이익이 급감하거나, 경영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사전에 위험을 제거 또는 최소화하는 기법. 나중에 지급하거나 받아야 할 외화의 원화 대비 환율을 해당 업체와 협의해 사전에 미리 정해두는 선물환거래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