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족에서 상처를 읽고 치유의 답을 찾다

최근 국내외 영화 가운데 상당수가 현대사회가 가진 문제의 근원과 해답을 모두 가족에게서 찾고 있다. 장르나 예산에 상관없이 재난을 다룬 블록버스터부터 거장 감독의 예술 영화까지 가족을 화두로 삼는 작품들이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경제적·사회적 위기나 재난이 불시에 들이닥치는 '불확실의 시대'에서 해체되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가족이 갖는 책임과 역할에 대해 사회에 되묻고 있는 것이다.

가족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영화들은 해체된 가정과 가족에게 버림받은 개인이 급증하는 현실을 그대로 녹여내고 있다. 지난해 말 개봉한 강이관 감독의 '범죄소년'은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할아버지와 둘이 살아가던 10대 소년이 절도죄로 소년원에 가게 되는 데서 영화가 시작된다. 지난 10일 개봉한 '프레셔스'(감독 리 다니엘스)는 가정에서 학대받은 흑인 소녀가, 지난해 개봉한 장 피에르·뤽 다르덴 감독의 '자전거 탄 소년'은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가 주인공이다.

이런 영화들은 특히 선진국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비(非)생계형 범죄나 최첨단 사회문제를 가족과 연관시킨다. 예를 들어 지난해 개봉한 '케빈에 대하여'(린 램지)는 지난달 14일(현지 시각) 미국 코네티컷주 뉴타운의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연상케 한다. 범인 애덤 랜자(20)는 총기를 난사해 어린이 20명과 교직원 6명을 숨지게 했고, 집에서 어머니도 살해했다. 그는 학업 성적을 강조하는 어머니에게서 압박을 느낀 인격 장애 외톨이였다고 한다. '케빈에 대하여'의 주인공 역시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갈등을 빚다가 활을 이용해 가족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살인을 저지른다.

영화는 단지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상기시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상처받은 개인을 치유하는 것도 결국은 가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 달 개봉을 앞둔 우리 영화 '남쪽으로 튀어'(임순례)는 경쟁으로 점철된 각박한 한국 사회를 거부하고 새로운 형태의 행복을 찾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다. 24일 개봉 예정인 '7번 방의 선물'(이환경)은 여섯 살 지능을 갖고 있는 아버지 영구(류승룡)와 딸 예승(갈소원)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재일교포 양영희 감독이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선보인 '가족의 나라'에는 역사의 굴레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지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가족이 등장한다. 2004년 동남아시아 쓰나미 속에서 살아남은 실제 가족을 영화로 옮긴 '더 임파서블'(후안 안토니오 바요나)과 지난해 흥행한 '연가시'(박정우)는 모두 재난을 배경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상기시키고 있다. 영화는 가족의 안을 들여다볼 뿐 아니라 그 틀의 변화도 발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다문화 가정 자녀가 주인공인 '완득이'(이한)와 '마이리틀히어로'(김성훈), 아이를 가지려는 동성 연인이 나오는 '두결한장'(김조광수)처럼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 대해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요즘 영화들은 과거 할리우드의 상업 영화들이 보여줬던 전형적인, 단란한 가족보다는 현실적인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게 특징"이라며 "개인주의나 가난·범죄와 같은 사회문제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사회 공동체가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고 했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범죄와 재난 등 개인은 물론 사회도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이 나오면서 감독들이 영화를 통해 과거 소중하게 여겼던 가치들을 되살리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가족"이라고 했다. 한 영화 제작자는 "현실에서 다문화 가정과 입양 가정 등이 급증했으니 영화도 이를 반영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관객도 이에 큰 거부감을 갖지 않아 앞으로도 새로운 형태의 가정을 다룬 영화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