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깨우는 피아니스트, 4년 만에 돌아오다

피아니스트 김용배(58) 전 예술의전당 사장은 2004년 5월 취임 직후 텅 비어 있는 아침 공연장을 둘러보다가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다. 보통 오전에는 잠들어 있는 공연장을 '해설 음악회'로 깨워내기로 한 것. 4개월간 준비 끝에 그가 직접 프로그램 구성과 진행, 해설까지 맡은 '11시 콘서트'가 그해 9월 시작됐다. '저녁이 아닌 아침 음악회'라는 그의 역발상에 2008년 12월까지 첫 회를 제외하고 51회 연속 매진을 이뤘다. 10만 명의 관객이 해설 음악회를 다녀갔다. 전국 공연장으로 오전 해설 음악회가 퍼지는 계기가 됐고, 김 전 사장은 '아침을 깨우는 피아니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올해 그가 아침을 깨우는 피아니스트로 되돌아온다. 경기도 안양 평촌아트홀에서 열리는 아침 음악회의 해설을 맡는 것. 오는 3월부터 12월까지 매달 둘째 주 화요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음악회의 이름은 '그 남자의 초대'다.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전국에 하드웨어를 잘 갖춘 공연장은 늘어났지만, 정작 소프트웨어인 공연은 부족하기만 해요. 저녁에 외출하기 어려운 주부나 노년층 관객에게 오전 음악회는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일지도 몰라요."

1988년부터 만 4년간 MBC FM '나의 음악실'을 맡았던 김 전 사장은 해설 음악회를 진행할 때도 독특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그는 마지막 곡을 연주하기 전에 해설을 마치고 연주자보다 먼저 퇴장한다. "연주회의 주인공은 연주자이지 해설자가 아니다"라는 소신 때문이다. 10~20대 음악 영재 편중에 대한 반성으로 30~40대 중견 연주자 중심으로 기용하는 것도 그의 고집이다.

퓨전 음악보다 클래식 음악을 원곡 그대로 연주하고, 일반 음악회에서 좀처럼 공연되지 않는 낯선 작품도 간간이 집어넣는다. 그는 "어린아이에게 우유를 먹이려고 설탕을 넣으면 아이는 설탕만 찾게 된다"고 말했다. 라디오 방송을 하듯 편안하게 작품을 소개하고, "슈베르트 교향곡 5번 1악장의 첫 주제는 가수 패티 김이 불렀던 '서울의 찬가'와 닮았다"는 식으로 적절한 유머를 가미하는 것도 김 전 사장만의 매력이다.

김 전 사장은 음대가 아니라 서울대 미학과 출신. 3세 때부터 어머니 권유로 피아노를 배웠지만, 정작 부모의 반대로 음대에 진학할 수 없었다. 그는 "대학 시절 내내 한 해 절반은 휴교 상태였다. 하루 최대 12시간씩 연습하면서 피아노에 대한 갈증을 달랬다"고 했다. 미학과 졸업 후 서울대 음대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미국 가톨릭대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김 전 사장은 생후 10개월 때 소아마비를 앓았고, 백신 부족으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전쟁 직후여서 예방접종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왼쪽 다리가 불편해 지금도 피아노 왼쪽 페달은 쓰지 못한다. 그는 "드뷔시·라벨 같은 인상파 음악을 피해야 하는 아픔이 있지만, 페달 대신 손만으로도 다양한 음색을 빚어내기 위해 연습에 더 매달렸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고전과 낭만적 성격을 동시에 갖춘 베토벤과 슈베르트, 쇼팽의 피아노곡에 끌린다고 했다. '안양발(發) 아침 음악회 인기'라는 소식이 들려온다면, 절반은 그의 따뜻한 해설 덕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