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기억을 잃는 노인, 그를 기억하는 로봇

미국 제이크 슈레이어 감독의 '로봇 앤 프랭크'엔 누구나 꿈꿀만한 이상형이 등장한다. 그(혹은 그녀)는 청소, 빨래, 요리를 불평불만 하나 없이 완벽하게 해내고 같이 사는 사람의 건강을 열심히 챙긴다. 게다가 똑똑해서 대화도 잘 통하고 유머 감각까지 있다. 다만 아쉬운 건 외모다. 로봇이기 때문에 키는 열 살짜리 아이만 하고, 이목구비가 없는, 딱딱한 쇳덩어리다.

치매 증세를 보이는 노인 프랭크(프랭크 란젤라)는 이름도 없이 '로봇'이라고 불리는 이 로봇 도우미와 함께 살게 된다. 아버지를 챙겨주다 지친 아들이 건넨 선물이다. 프랭크는 자신이 성가신 존재가 돼버린 것만 같아 로봇을 박대한다. 그러나 젊은 시절 도둑질로 감옥을 들락거린 프랭크는 '로봇'에게서 '절도의 재능'을 발견하고서 그와 함께 새로운 범행을 모의한다.

프랭크는 기억을 잃어가는데 '로봇'의 메모리에는 그들이 함께 한 모든 순간이 기록된다. 버튼 하나 눌러 메모리를 지우기만 하면 프랭크는 자신의 범죄 행각을 완벽히 숨길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망설인다. 추억을 공유하는 동반자가 사라진다는 상실감을 느끼는 것이다. 치매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는 슬픔을 잘 알고 있기에 아무런 감정 없는 로봇의 기억마저도 그에겐 소중하다.

가까운 미래 사회를 그린 SF영화지만, 화려한 볼거리는 하나도 없으며 로봇의 외양과 기능도 평범한 수준이다. 250만달러(약 26억원)를 갖고 20일 만에 영화를 찍었어야 했던 감독의 사정을 생각하면 수긍이 간다. 하지만 영화가 담박할수록 관객이 영화에 대해 생각할 여지는 많아지는 법. 그런 점에서 '로봇 앤 프랭크'는 적은 예산과 노동력으로 관객의 머리와 가슴을 자극하는, 효율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의 흠은 한국어 번역이다. 유행어를 쓰지 않은 문장을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 그 자체로 충분히 재밌는데도 '~하삼' '킹왕짱'처럼 정체불명의 단어들을 남발한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다. 1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이것이 포인트!

#대사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메모리 삭제 버튼을 차마 누르지 못하는 프랭크에게 로봇이 하는 말)

#장면 양로원에 간 프랭크가 자신의 ‘로봇’과 똑같이 생긴 도우미 로봇을 보고 흠칫한다. 이내 수십 개의 도우미 로봇이 눈앞에 나타나자 자조의 미소를 짓는다.

#이런 분 보세요 노후 설계가 고민인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