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View] "올해 주식펀드로 돈 돌아오는 중… 안전지향의 보험사들도 기웃"

여의도 증권가에서 '가치 투자자'로 유명한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의 6평 남짓 사무실은 밝고 쾌적했다. 한숨 섞인 담배 연기가 한가득이었던 2년 전 사무실 풍경과는 딴판이었다. 당시는 자동차·화학·정유라는 일명 '차·화·정(車·化·精)' 주식이 시장을 주도하던 때였다. 차·화·정 같은 경기 민감 주를 담지 않은 그의 펀드는 상대적으로 성과가 부진했고, 그의 사무실은 저조한 펀드 수익률을 대변하듯 어둡고 우울했었다.

그런데 지난 14일 만난 이 부사장은 얼굴 표정부터 달랐다. 그는 들뜬 목소리로 "펀드 누적수익률이 100%를 넘고 돈을 잃은 펀드 고객이 한 명도 없을 때 담배를 끊겠다고 공언했는데, 최근 이 두 가지 조건을 다 달성해 담배를 끊었다"고 말했다. 한국밸류자산운용은 지난해 18.7% 수익을 올려 국내 주식형 펀드를 운용하는 46개 운용사 중 1위를 기록했다. 특히 그가 2006년 4월에 출시한 10년투자 펀드는 경기 민감 대형주에 밀려 소외 받았던 중소형 가치주 가격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출시 이후 누적수익률이 116%(14일 기준)에 달했다. 연 복리로 따지면 매년 10% 이상 수익을 거뒀다.

"제가 소심한 AB형입니다. 단 한 명이라도 손실 난 투자자가 있으면 잠을 제대로 못 잡니다. 많이 버는 펀드가 아니라 절대 깨지지 않는 펀드가 목표인데, 돈을 까먹은 투자자가 있다는 걸 참을 수 없었죠. 스트레스 때문에 끊었던 담배도 결국 다시 피우게 됐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담배도 끊었고, 밤에도 두 발 쭉 뻗고 편안하게 잠듭니다. 10년투자펀드 투자자 중에 돈을 까먹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거든요. 코스피지수가 2228 최고점을 찍은 지난 2011년 5월 2일에 가입한 투자자도 10%가 넘는 수익을 거뒀습니다."

코스피지수가 2000을 뚫고 올라서도 여전히 마이너스(-) 수익으로 고통받는 펀드 투자자들이 넘쳐나는 지금, 이채원 부사장의 펀드는 도대체 어떻게 운용되고 있길래 모든 투자자가 플러스 수익을 챙기고 있는 걸까. 머니섹션 M이 그 궁금증을 차근차근 풀어봤다.

―작년 운용사 중에 수익률 1위였다.

"지난해는 경기변동주의 몰락과 중소형 가치주의 부활이란 말로 압축할 수 있다. 지난 2009~2011년 상반기까지 차·화·정으로 대변되는 대형 경기순환주들이 조정을 받고 그동안 소외됐던 식품·음식료·전기·가스·통신 같은 전통적인 가치주가 약진하면서 10년투자펀드에서 큰 수익이 났다."

―모든 투자자가 플러스 수익을 낸 비결은.

"펀드 출시 이후 6년 8개월이 지났는데, 지금 펀드 기준가가 최고점이다. 심지어 코스피지수가 최고였던 2228일 때 펀드에 가입한 사람도 10% 이상 수익이 났다. 코스피지수와 상관없이 펀드 수익이 좋은 이유는 남들과 반대로 투자했기 때문이다. 코스피지수가 최고치를 찍었을 당시, 잘나가던 종목을 다 팔았다. 수익이 난 근거와 뿌리를 싹둑 잘라버렸기 때문에 마이너스(-)가 안 난 것이다."

―그게 바로 가치 투자인가.

"그렇다. 가치 투자는 주가와 가치에 격차(갭)가 벌어졌을 때가 타이밍이다. 인기 있는 주식은 늘 제대로 가치를 평가받는다. 하지만 소외되고 저평가되고 버려지는 주식은 알려지지 않았거나 거래량이 적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가격이 과도하게 싸질 때가 있다. 가치투자는 이런 종목을 찾아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미치도록 주식을 사고 싶을 때는 팔고, 남들이 공포 속에 주식을 내던질 때 사들여야 한다. "

―가치 투자가 왜 지금 유독 빛을 발하나.

"우리 펀드가 많이 담고 있는 한국전력이나 KT 같은 주식은 사실 크게 올라갈 주식은 아니다. 이런 주식의 가격이 갑자기 많이 오른다면 사실 그게 이상한 거다. 그런데 지금, 이런 가치주들이 승승장구하면서 오르고 있다. 이건 글로벌 성장이 둔화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해당 기업의 가치는 변함이 없는데, 시장 참여자와 환경이 달라지면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저성장 시대가 가치주 몸값을 올렸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고성장 파티는 끝났다고 본다. 성장이 둔화하자, 투자자들은 막연한 성장가치보다는 손에 잡히는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지금 주식시장에서 활약하는 업종은 전부 저성장 테마로 묶을 수 있다. 시세이도나 샤넬 같은 비싼 명품 화장품이 아니라, 미샤나 더페이스샵 같은 저가 화장품이 인기를 끈다. 제약회사도 원료 의약품을 위탁생산하는 API 테마를 가진 기업을 중심으로 주가가 올랐다. 의류 역시 싼 가격에 질 좋은 상품을 만드는 ODM(주문자개발 생산)이나 OEM(주문자상표부착 생산) 회사가 잘나간다. 지금 국내엔 1800개 상장회사가 있는데 이 와중에 성장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되겠느냐. 성장이 둔화되면 더 이상 팔 우물이 없으니 좀 더럽더라도 고여 있는 우물을 정화해서 먹을 수밖에 없다. 곳간에 재물이 두둑하고, 꾸준히 돈도 벌면서, 땅이나 빌딩 같은 자산도 많이 가진 알짜 기업들이 향후 시장을 주도할 것이다."

―가치 투자 땐 중소형주만 담아야 하나.

"그건 아니다. 다만 중소형주가 대형주에 비해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소형주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100대 대형주의 PBR(주가순자산비율)과 650개 중소형주 PBR을 14년간 비교해 봤더니 평균적으로 대형주가 중소형주보다 65% 비쌌다. 즉 대형주가 평균 65%의 프리미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위기가 오면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생기면서 대형주 프리미엄이 훌쩍 높아진다. 이땐 중소형주를 팔고 대형주를 펀드에 담는다. 중소형주는 부도가 나서 아예 휴지조각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러다가 경기가 살아날 조짐으로 위험자산 선호현상이 생기고 대형주 프리미엄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대형주는 팔고 중소형주를 산다. 살아남은 중소형주는 '대단한 아이'여서 주가가 20~30배씩 오른다."

―지금 중소형주를 살 때인가.

"현재 대형주 프리미엄은 135%까지 갔다가 평균점(65%)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럴 땐 대형주와 중소형주를 적절히 섞어야 한다. 지난 2~3개월간 가격이 적정 가치에 도달했다고 여겨진 중소형주는 많이 팔았다. 한때 중소형주 비중이 90%까지 됐던 적도 있는데 지금은 대형주도 적절히 편입하고 있다. 펀드 출시 이후 단 한 주도 안 샀던 삼성전자를 펀드에 편입시켜 지금 비중이 15% 수준까지 늘었다. "

―올해 주식시장 전망은 어떤가.

"아무 일 없을 것 같다. 별일 없어 잠잠할 것 같고, 있어 봤자 잔파도 정도랄까.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마비될 것 같은 엄청난 패닉은 안 올 것이란 신념을 갖고 있다. 전 세계 정부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대공황이 오는 것 같은 쇼크는 막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 위기가 당장 내일 해결된다고 해도 이미 골이 깊기 때문에 경기가 불꽃처럼 살아나진 않을 것이다. 완벽히 갇혀 있는 시장이라고 보면 되겠다."

―연초부터 펀드 환매가 끊이지 않는다.

"10년투자 펀드도 한창때 설정액이 1조2000억원까지 갔지만 환매가 많이 돼 지금은 반 토막 났다. 그러나 펀드 환매는 서서히 잠잠해질 것이다. 집사람이 안전지향 투자자인데, 얼마 전에 예금 이자가 너무 낮다며 펀드에 넣으면 어떻겠느냐는 소리를 처음으로 하더라. 연 3% 예금 이자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으로 자금 이동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최근 극도의 안전주의자인 보험사들에서 움직임이 보인다. 채권 가격이 올라 부담스럽다며 주식 관심도가 한층 높아졌고, 실제로 자금 집행까지 이뤄지고 있다."

―코스피가 2000인데 펀드에 가입해도 되나.

"여유자금이 있어 가입한다면 적립식으로 최소한 3회 이상 분할해서 넣길 권한다. 코스피지수가 2000인데 당장 3000까지 갈 리는 없다. 오히려 1900은 언제든 갈 수 있다. 지수가 낮으면 한 방에 넣는 것이 유리하지만 지금처럼 코스피지수가 고점에 왔을 땐 적립식 투자가 유리하다. 본전이 되었다고 환매하는 건 권하지 않는다. 장이 나쁘든 좋든 자금이 필요해 환매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자산의 일정 부분은 펀드에 담아두길 권한다."

―기대 수익은 얼마로 잡으면 되나.

"10년투자펀드의 목표 수익은 은행 금리에 플러스 알파를 더한 수준이다. 올해 6% 정도가 목표인데 벌써 2%가 넘었다. 너무 빨리 많이 벌어서 주식을 팔아야 하나 고민 중이다(웃음)."